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자살 생중계' 안 볼 권리는 없는가

조교환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지난 4월 태국의 한 남성이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어린 딸과 동반 자살하는 장면이 생중계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불과 보름 전에는 미국에서 30대 남성이 분신자살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전파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살·살인·성폭행·집단구타 등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과 범죄들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다. 이달 초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인력 3,000명을 추가로 투입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유해 콘텐츠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현실이다. 모니터링 인력을 늘린다고 해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콘텐츠를 감시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SNS 업체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통한 검열시스템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런 가운데 영국 가디언지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의 콘텐츠 관리 규정을 담은 내부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내부 지침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폭력·자살 생중계를 제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을 허용하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오히려 돕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표현의 자유라는 그럴싸한 논리를 앞세운 책임 회피인 셈이다.


원론 수준에 불과한 논리만으로 혐오스러운 콘텐츠를 방치하는 기업에 언제까지 면죄부를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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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0억명이 거미줄처럼 연결돼있는 페이스북에서 생중계 영상은 파급력이 폭발적이다. 현재까지 이런 사건들은 해외에서 주를 이뤘지만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페이스북 라이브는 별도의 규제 없이 누구나 활용 가능하고 시청에 제약도 없다. 삭제하기 전에는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에게도 잔혹한 동영상이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이용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상황에서 청소년 모방범죄로 이어질까 걱정된다.

이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는 페이스북이 충분히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이를 법으로 제재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국회는 남의 일인 듯 구경만 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해 콘텐츠를 방치한 인터넷 업체에 최대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상정했지만 국회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사업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방통위가 시정 조치한 유해 콘텐츠 중 90%가 해외사업자를 통해 유통된 점으로 볼 때 실효성마저 없다. 국내기업이든 해외기업이든 국내에서 영업하는 모든 SNS 업체에 대해 공평하게 제재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살·폭력 등 혐오스러운 동영상을 보지 말아야 할 권리가 있다. 국민이 깨끗하고 안전한 미디어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change@sedaily.com

조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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