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통의동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는 종교인 납세 성역화에 반대한다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앞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준비와 홍보 부족을 이유로 내년부터로 예정돼 있던 종교인 과세를 2년 늦추자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은 전국민에게 공평히 적용돼야 하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옛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의 수장이 한 발언인 탓에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종교인 과세를 두고 나라가 시끄러운 것일까.
최근의 종교인 과세 논란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3월.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종교인 과세 문제를 더 이상 미루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40여 년간 물 밑에서 잠자고 있던 종교인 과세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 것이다.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성직자에게도 갑종근로소득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지만 종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사안이었다.
이후 국민개세주의 원칙이 힘을 받으면서 종교인 과세는 조금씩 속도를 냈다. 2011년 기준으로 종교 교직자는 기독교 14만483명을 비롯해서 불교 4만6,905명, 천주교 1만5,918명, 천도교 630명 등 38만3,126명에 달하는 데 이들에 대한 과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8월, 기획재정부는 종교인 과세가 담긴 세법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듬해 2월 임시국회에서 종교계의 표심을 의식한 의원들 탓에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결국 2015년 종교인 소득을 기타소득 중 ‘종교인 소득’으로 정하고 소득구간에 따라 6~38%의 세금을 부과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때도 종교인의 부담을 우려, 각종 혜택과 함께 2018년으로 시행 시기를 늦췄다. 가만히 있었으면 내년부터 자동으로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던 것이 김진표 위원장이 “시행을 2년 유예하자”고 하면서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인들이 내야 할 세금이 많은 것은 아니다. 각종 필요경비 인정 혜택이 주어져 종교인의 세금 부담은 근로소득자보다 20~40%가량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종교인 23만명 가운데 과세 미달자를 빼면 약 20%인 4만6,000만명 정도만 세금을 내게 된다. 지난 2013년에 나온 추정치로는 종교인 과세가 시작되면 연간 1,000~2,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힌다. 지난해 국가 세입(345조원)을 감안하면 종교인 과세는 규모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낸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는 게 조세전문가들의 얘기다.
종교계 내부에서도 과세에 찬성하는 쪽이 존재한다. 한국천주교는 1994년부터 성직자들의 성무활동비와 생활비, 수당, 휴가비 등에 근로소득세를 자발적으로 납부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도 종교인 납세에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이다.
하지만 과세가 시작되면 세무조사로 인해 종교인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당장 종교인을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가 문제다. 김진표 위원장도 이를 감안해 종교계에 대한 세무조사를 없애고 과세를 2년 늦추는 방안을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인의 거액 기부에 대해 이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같은 보다 세밀한 과세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규모 종교시설 입장에서는 금액이 작더라도 과세 자체가 부담이다.
이 때문에 국회 안팎에서는 정부가 국정기획위의 뜻에 따라 유예안을 들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르면 다음달 국세청이 종교인 과세를 위한 설명회를 열 계획이지만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정권 입장에서는 종교계와 부딪히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부담이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 개신교 신자 수는 967만6,000명, 불교는 761만9,000명, 천주교는 389만명 수준이다. 지난 26일 청와대는 “(종교인 과세 유예는) 김진표 위원장의 이야기고 우리는 더 살펴보고 조율이 필요한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말에 힘을 싣지는 않았지만 더 조율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한 셈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국민개세주의 측면에서 종교인들도 최소한의 세금은 낼 필요가 있다”며 “과세가 시작되면 재정을 투명하게 운용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