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점심 영업이 끝날 때쯤 찾은 갈비 식당. 남아공 케이프타운 도심에서도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롱스트리트(Long Street)’에 위치한 덕분에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손님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모두 빠져나간 시간. 덕분에 한적한 점심을 먹는 게 가능했다. 가장 인기가 높은 메뉴는 ‘갈비 세트’. 삼겹살부터 쌈을 싸먹을 수 있는 각종 채소와 김치, 찌개(된장 혹은 김치 중 택1)까지 한국의 고깃집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 없는 한 상이 차려진다. 주인인 콘래드 씨를 비롯해 종업원 모두는 남아공 현지인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콘래드 씨 입에서 들려왔다. “빨리, 빨리”. 남아공에서 들을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살 때 워낙 많이 들었던 말”이라며 “사실 현지인이나 외국인이 오면 쓰지 않는데, 가끔 한국인이 오면 재미를 주기 위해 사용하곤 한다”고 밝혔다.
갈비 식당이 한국 고깃집의 모습과 거의 100% 비슷한 것은 그래서였다. 콘래드 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한국에 거주했다. 어려서부터 아시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결정한 곳이 한국이었다. 특이한 것은 서울은 가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청주와 부산에서 머물다가 제주도에서 2년을 더 보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마지막 제주에서의 2년은 정부 산하 교육 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콘래드 씨는 “청주에 한국인 친구가 살았기 때문에 첫 거주지로 그곳을 선택했다”며 “갈비를 처음 먹은 것도 이 때였다”고 설명했다. 학창 시절 남아공에서 요리를 배웠던 그에게 갈비는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살던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고깃집을 자주 가면서 갈비 맛에 빠져들었고, 남아공에서의 사업을 꿈꾸게 됐다.
한국에서 5년 동안 모은 돈은 남아공에서 갈비 식당을 차리는 데 고스란히 투자했다. 케이프타운에는 한식당이 총 3개다. 한국식당과 서울식당, 그리고 갈비식당이다. 이 3개의 식당 중 한국 고깃집에서나 쓰일법한 불판과 환풍기 시설을 모두 갖춘 곳은 갈비식당이 유일하다. 콘래드 씨는 한국에서 이 시설을 들여오는 데만 2,500만원을 썼다. 돈이 부족했지만, 매년 조금씩 나눠 사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갈비라는 메뉴를 팔기 위해서는 한국의 고깃집 시설을 제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음식 맛은 어떨까. 솔직히 훌륭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한국인의 입에는 어딘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드는 맛이다. 고기의 맛은 비슷한데 기본 반찬이나 찌개에서 차이가 난다. 짜고 매운 맛은 덜하고, 단맛이 추가돼 약간 심심하다. 성공의 원동력은 오히려 그 점에 있다는 것이 콘래드 씨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의 맛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현지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며 “식당을 찾는 고객의 비중을 보면 현지인 60%, 외국인이 20%, 한국인은 10% 수준”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메뉴를 좀 더 늘린다. 조금 더 한국적인 맛의 음식을 만드는 동시에 남아공 현지인이 좋아할 만한 퓨전 요리도 내놓을 생각이다. 콘래드 씨는 “케이프타운을 찾는 한국인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도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여러 사람들이 함께 소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 사회적 공간이 되길 꿈꾼다”고 강조했다./글·사진(남아프리카공화국)=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