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라이프

남아공에서 ‘갈비’를 맛보다

남아공 현지인이 남아공 현지에 차린 한식당

‘갈비 세트’, 모두에게 최고 인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Cape Town)에는 특별한 한식당이 있다. 간판에 쓰여있는 것은 ‘Galbi(갈비)’라는 단어 하나 뿐인 곳이다. 불판이며 테이블, 심지어 수저까지 모두 한국 고깃집과 똑같은데 주인이 색다르다. 매장에 들어서면 계산대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남아공 현지인이 식당을 운영하는 당사자다. 예약 없이는 자리에 앉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한식당을 남아공 사람이 차리게 된 배경은 뭘까. 그 주인공인 콘래드 그론왈드(Coenraad Groenewald·36)씨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콘래드 그론왈드씨가 식당 간판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콘래드 그론왈드씨가 식당 간판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점심 영업이 끝날 때쯤 찾은 갈비 식당. 남아공 케이프타운 도심에서도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롱스트리트(Long Street)’에 위치한 덕분에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손님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모두 빠져나간 시간. 덕분에 한적한 점심을 먹는 게 가능했다. 가장 인기가 높은 메뉴는 ‘갈비 세트’. 삼겹살부터 쌈을 싸먹을 수 있는 각종 채소와 김치, 찌개(된장 혹은 김치 중 택1)까지 한국의 고깃집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 없는 한 상이 차려진다. 주인인 콘래드 씨를 비롯해 종업원 모두는 남아공 현지인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콘래드 씨 입에서 들려왔다. “빨리, 빨리”. 남아공에서 들을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살 때 워낙 많이 들었던 말”이라며 “사실 현지인이나 외국인이 오면 쓰지 않는데, 가끔 한국인이 오면 재미를 주기 위해 사용하곤 한다”고 밝혔다.

갈비식당의 메뉴판. 최고 인기인 갈비세트는 2명이서 먹기에 충분한 양이다. 남아공 화폐로 260란드(Rand). 우리 돈 2만2,000원 수준이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테이크가 1만원이 조금 넘는 것과 비교하면 꽤 비싼 편이다.갈비식당의 메뉴판. 최고 인기인 갈비세트는 2명이서 먹기에 충분한 양이다. 남아공 화폐로 260란드(Rand). 우리 돈 2만2,000원 수준이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테이크가 1만원이 조금 넘는 것과 비교하면 꽤 비싼 편이다.


갈비 식당이 한국 고깃집의 모습과 거의 100% 비슷한 것은 그래서였다. 콘래드 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한국에 거주했다. 어려서부터 아시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결정한 곳이 한국이었다. 특이한 것은 서울은 가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청주와 부산에서 머물다가 제주도에서 2년을 더 보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마지막 제주에서의 2년은 정부 산하 교육 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콘래드 씨는 “청주에 한국인 친구가 살았기 때문에 첫 거주지로 그곳을 선택했다”며 “갈비를 처음 먹은 것도 이 때였다”고 설명했다. 학창 시절 남아공에서 요리를 배웠던 그에게 갈비는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살던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고깃집을 자주 가면서 갈비 맛에 빠져들었고, 남아공에서의 사업을 꿈꾸게 됐다.

갈비 식당의 테이블에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환풍기부터 고기 불판까지 마련돼 있어 마치 한국의 고깃집을 연상시킨다. 이 모든 것은 콘래드 씨가 한국에서 수입해 들여놓았다. 테이블 맨 위로는 종업원을 호출하는 벨까지 붙어있다. 남아공 어느 식당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치다.갈비 식당의 테이블에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환풍기부터 고기 불판까지 마련돼 있어 마치 한국의 고깃집을 연상시킨다. 이 모든 것은 콘래드 씨가 한국에서 수입해 들여놓았다. 테이블 맨 위로는 종업원을 호출하는 벨까지 붙어있다. 남아공 어느 식당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치다.


남아공에서 마주한 숯불. 주방 한 구석에서 불을 피워 종업원이 테이블로 가져오는 것까지 한국과 같다. 숯불을 담는 스테인리스 통 주변에 열림과 닫힘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모든 것을 수입했다는 증거다.남아공에서 마주한 숯불. 주방 한 구석에서 불을 피워 종업원이 테이블로 가져오는 것까지 한국과 같다. 숯불을 담는 스테인리스 통 주변에 열림과 닫힘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모든 것을 수입했다는 증거다.


한국에서 5년 동안 모은 돈은 남아공에서 갈비 식당을 차리는 데 고스란히 투자했다. 케이프타운에는 한식당이 총 3개다. 한국식당과 서울식당, 그리고 갈비식당이다. 이 3개의 식당 중 한국 고깃집에서나 쓰일법한 불판과 환풍기 시설을 모두 갖춘 곳은 갈비식당이 유일하다. 콘래드 씨는 한국에서 이 시설을 들여오는 데만 2,500만원을 썼다. 돈이 부족했지만, 매년 조금씩 나눠 사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갈비라는 메뉴를 팔기 위해서는 한국의 고깃집 시설을 제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갈비세트를 시키면 삼겹살은 물론, 공깃밥과 된장찌개부터 각종 야채와 소스까지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단, 한국인의 입맛에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갈비세트를 시키면 삼겹살은 물론, 공깃밥과 된장찌개부터 각종 야채와 소스까지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단, 한국인의 입맛에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음식 맛은 어떨까. 솔직히 훌륭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한국인의 입에는 어딘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드는 맛이다. 고기의 맛은 비슷한데 기본 반찬이나 찌개에서 차이가 난다. 짜고 매운 맛은 덜하고, 단맛이 추가돼 약간 심심하다. 성공의 원동력은 오히려 그 점에 있다는 것이 콘래드 씨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의 맛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현지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며 “식당을 찾는 고객의 비중을 보면 현지인 60%, 외국인이 20%, 한국인은 10% 수준”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메뉴를 좀 더 늘린다. 조금 더 한국적인 맛의 음식을 만드는 동시에 남아공 현지인이 좋아할 만한 퓨전 요리도 내놓을 생각이다. 콘래드 씨는 “케이프타운을 찾는 한국인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도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여러 사람들이 함께 소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 사회적 공간이 되길 꿈꾼다”고 강조했다./글·사진(남아프리카공화국)=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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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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