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탈(脫)원전·화전 공약에 따라 폐쇄되거나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는 발전시설의 총설비용량은 2만3,919㎿다. 문 대통령은 공정률이 28%에 달하는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해 월성 1호기, 신규 6기 등 모두 9개 원전시설을 줄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또 가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은 노후 화력발전소 10기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공정률이 10% 미만이거나 계획 중인 화력발전소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되면 우리나라는 산술적으로 에너지 부족 국가가 된다. 정부가 지난 2015년 세운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오는 2029년 우리나라의 총발전설비 용량은 13만6,553㎿다. 공약대로 원전과 화전이 사라지면 발전설비용량은 11만2,634㎿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예상되는 최대 전력수요는 11만1,929㎿다. 발전시설의 수리보수를 위해 가동을 멈추는 기간 때문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력예비율 15%(2029년 기준 1만6,985㎿)를 감안하면 필요한 전력량보다 발전량이 적은 셈이다.
정부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지만 이도 충분하지는 않다. 2017년 현재 산업부가 추산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의 비중은 전체의 7%가량. 2029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13%포인트 높일 경우 늘어나는 발전설비용량은 1만4,550㎿다. 발전설비용량이 최대 전력수요보다 다소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기는 하지만 전력예비율 22%를 맞추기에는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난해처럼 기록적인 불볕더위로 최대 전력수요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 경우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전기차 확대 정책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수립한 보급계획상 2020년 전기차에서 발생하는 최대 전력수요는 900㎿ 수준이다. 피크시간대에 급속충전기(50㎾) 3,000대 모두에서 전기차 충전이 이뤄지고 각 가정에서 10만대(누적 대수 25만대의 40%)가 완속 충전(7.0~7.7㎾)되는 것을 전제로 한 추정이다. 단순 계산으로 2029년까지 전기차의 누적 대수가 100만대 수준까지 올라서고 급속충전기가 1만2,000대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최대 전력수요는 3,680㎿로 증가한다. 이는 신규 원전 2기 분량을 훌쩍 넘는 수준이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7차 계획 당시보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증가하는 등의 영향으로 8차 계획에서는 최대 전력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하지만 7차에는 포함하지 못한 전기차 수요를 감안하면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낙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수급도 문제지만 전기요금 인상 압력도 넘어야 할 산이다. 주요 전력원으로 부상하는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간헐적으로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피크시간대에 전력공급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대규모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시설에 천연가스(LNG) 발전설비가 따라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전과 화력발전이 사라진 ‘기저발전’의 자리를 발전단가가 비싼 LNG가 메울 경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는 국가 중 원전과 화전을 동시에 포기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 곳도 없다”며 “석탄을 버린 영국은 국민적 합의를 통해 원전을, 원전을 버린 독일은 결국 다시 갈탄발전을 선택했다. 어떤 걸 포기하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