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에너지 기득권’ 손 들어준 트럼프…'화력 발전' 회귀 선언

제조·건설·에너지·군수 기업들 탈퇴 압박에 부응

‘러스트벨트’ 부흥 약속도 ‘탄소배출’ 없이는 실현 불가

미국만 탄소 발전 고집시 첨단 에너지 경쟁서 밀릴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있다./워싱턴=AP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있다./워싱턴=AP연합뉴스




세계인이 우려했던 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녹색 성장(Green Growth)이 아니라 기존 산업과 에너지 패러다임을 선택했다.


미국의 ‘산업 르네상스’를 약속하며 역전승을 거둔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건설업·에너지 등 기득권 손을 들어준 셈이다. 공화당 지지 세력인 재계, 특히 자동차 기업과 에너지·건설·군수 업계는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을 조직적으로 지지해 당선에 일익을 담당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이들에게 계속 ‘빚’을 갚아야만 하는 처지다.

실제로 석유 재벌과 민영 발전소, 중공업 분야 기업들은 파리협정 이행을 공공연히 반대하며 뒤로는 새 정부에 끊임없이 압력을 넣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부와 권력에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에너지 기득권층은 외곽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에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국무장관이 바로 석유 재벌인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이고, 여당인 공화당의 재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큰 손’ 역시 석유 재벌인 코흐 가다.

석유 부호인 록펠러 가는 이미 미국의 상층부와 얽혀 모든 결정 구조에 관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기업뿐 아니라 핵심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중동부 산업 지대)’의 일반 노동자들에 약속했던 ‘굴뚝 산업 부흥’을 이루려면,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석유·석탄의 소비량을 줄이는 게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러시아 스캔들과 각종 국정과제의 좌초로 사면초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공업과 건설업 등의 부흥을 통한 경제 발전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유지할 마지막 카드로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 변화 이론을 믿지 않는 스콧 프루잇을 올해 초 파리협정 관련 주무 부처인 환경보호청(EPA)의 수장으로 앉힐 때부터 미국의 탈퇴는 어쩌면 기정사실이 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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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본인 역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데다 지난 대선 캠페인 기간부터 각종 기후변화 협정을 ‘중국의 사기극’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미국의 협정 탈퇴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세계 200여 개 국가 서명한 ‘거대 협약’인 파리협정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지 불과 반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자 탄소 배출량 2위 국가이면서 세계 외교협약을 주도해온 미국이 빠지게 된다면, 협정의 의미는 물론 실효성마저도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파리협정 체결 당시 이를 주도한 국가 중 하나인 데다 ‘녹색기후펀드’ 이행금과 유엔 기후변화 사무국 운영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담당하고 있어 당장 미국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부터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중국과 인도 등 이제 막 ‘굴뚝 산업’이 절정기에 오른 강대국들도 자국 내 기업들로부터 상당한 탈퇴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미국이 이번 일로 국제 외교무대에서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경제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세계 모든 나라가 에너지 구조를 수력, 풍력, 태양력, 스마트 그리드 등 친환경 방식으로 바꾸려는 상황에서 미국만 화력발전 비율을 그대로 고수하고 내연기관 자동차 등 기존 운송수단에만 집착한다면 첨단 에너지 산업의 주도권 경쟁에서도 밀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나 매카시 전 EPA 청장은 최근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현 정부가 청정 공기와 물, 토지에 대한 기본적 수요를 간과하고 있고, 파리협정 탈퇴는 국제적으로 기후 변화 대처를 주도함으로써 얻는 막대한 경제적 기회와 외교적 지렛대를 중국에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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