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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의 덕목을 논하는 자들에게 “노 페인, 노 게인”

예술감독직에 더해 단장직이란 2중고를 안고 있는 김학민 단장의 속마음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전문성이 있는 대중화’로 국민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그는 폼 나는 프로젝트보다 좋은 오페라 환경을 만들고 위한 기초작업인 ‘데이터 베이스 구축’ 과 ‘레퍼토리 시스템 확립’을 위한 장기적 플랜을 세우고 2년을 달려왔다.

자격 논란 등에 휘말리며 취임 53일 만에 물러난 한예진 전 단장 자진 사퇴 이후 4개월 째 공석이던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부임해서일까. 2015년 7월 부임한 11대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겸 단장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생각 보다 엄격했고 까다로웠다.


특히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다른 사립 단체들이 쉽사리 시도하기 어려운 오페라 작품을 올리는 선구안과 노력이 과소평가 돼 왔다. 그 예로 오페라 ‘로엔그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보리스 고두노프’ 등 난이도가 높은 작품을 올릴 때마다 그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몇몇 오페라 관계자들의 평을 종합하면, “작품은 좋더라. 하지만 그 정도 예산으로 그런 퀄리티를 내는 건 어렵지 않다”이다.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사진=조은정 기자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사진=조은정 기자


◇ “국립오페라단을 향한 쓴소리만이 아닌...믿음과 질타가 함께 필요해요”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직무실에서 만난 김학민 단장은 이에 대해 “오페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저희 국립오페라단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오페라 작업에 단지 돈을 쏟아 부은다고 해서 작품의 퀄리티가 바로 보장되는 게 아니잖아요. 또 돈이 적게 든다고 해서 작품이 무조건 나쁘게 나오는 건 아니죠. 저희가 무조건 잘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저희의 노력까지를 폄하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국립단체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예산으로 가장 최고의 결과가 나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 그 점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런데 더 대단하고 깜짝 놀랄만한 작품을 만들어내라는 태도에 대해선 할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나라가, 아니 지구가 깜짝 놀랄 작품을 만들겠어요?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단 측도 못하지 않을까요.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애정을 가지면 절대 그럴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이 하는 건 쉬워 보일 수 있겠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계시잖아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이라는 타이틀은 보다 책임이 따른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질타만 해서는 오히려 국립오페라단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그렇기에 김단장은 “국립오페라단이면 이 정도 공연을 올리는 게 당연하다고 하시는데, 당연하지 않아요”라고 뼈 있는 소리를 던졌다.

“단체가 잘 하기 위해선 일단은 믿어주고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나요. 그 뒤 어떤 점이 문제인지를 꼬집어 내 질타를 해주셔야죠. 믿음과 질타가 같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은 질타만 던지는 자세는 단체의 성장을 가로막게 됩니다. 제가 잘했다. 저희 직원들이 잘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희 역시 오페라단의 변화를 느끼고, 우리 안에서 이런 방향성을 향해 가고 있었기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최선을 다해 만들었던 것과 방향성을 플랜닝 하고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요. 그걸 사람들이 몰라준다면... 정말 잘 만들어진 음식과 대충 만들어진 음식 구별을 못한다면 그 사람 손해가 아닐까요. 그걸 교육시키는 것까진 저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예술이 하향 평준화가 아닌 올바르게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 없어요.“

◇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겸 단장의 중요한 덕목은 과연 무엇일까



‘국립오페라단이 국민 모두를 위한 오페라단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에는 토를 달진 않지만 국립오페라단 단장의 업적과 성과에 대해선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미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국립오페라단 단장의 중요한 덕목은 과연 무엇일까. 예술감독직에 더해 단장직이란 2중고를 안고 있는 김학민 단장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행정을 맡고 있는 단장이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아요. 반면에 예술감독직은 작품이 잘 만들어질 수 있게 방향성을 정하는 일이죠. 어찌보면 행정과 예술은 불과 물처럼 다른 성질이잖아요. 그것 자체가 무리가 있는 포지션이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에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해요. 행정이든 예술이든 어느 하나에 집중하면 좋겠는데, 두가지 직책을 만족시켜야 하다보니 그 외적인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게 많아요. 그런 점이 아쉽죠.

그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덕목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예술감독의 역할이건, 단장의 역할이건 그게 호락 호락 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호의적이지 못한 의견들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장의 덕목이라면 엄청나게 용맹무쌍한 장군처럼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강압적인 자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그런 덕목은 가지고 있지 못해요. 제 성질에도 맞지 않아요. 저는 목표를 멀리 보고, 거기를 향해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덕목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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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단장의 덕목은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 밖에 없어요. 환경을 별로 탓하고 싶진 않아요. 주어진 여건에서 자기의 덕목을 발현시키며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단장의 덕목 아닐까요.”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사진=조은정 기자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사진=조은정 기자


◇ 김학민 단장의 행복과 눈물...그리고 뚝심



약 2년의 시간 동안 “좋은 오페라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김학민 단장이 가장 행복했던 때는 국립오페라단 직원들의 얼굴 표정이 생기 있어 보일 때라고 한다. 물론 그는 ‘행복’이란 질문 앞에서, “왜. 힘든 것만 생각나지?”라며 지난 2년의 시간이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하기 보다는 사소한 순간들이 많아요. 우리 직원들 얼굴 표정이 생기있어 보일 때가 행복해요. 제가 뭔가 보탬이 됐다고 느낄 때 행복을 느끼나봐요. 물론 좋은 공연을 올렸을 때 당연히 행복하죠. 우리가 일을 잘했구나란 성취감이 따라오니까요. ”

“좋은 작품을 찾아내 국내 관객에게 꼭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김학민 단장의 뚝심은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특히 최근 선 보인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오페라 보는 행복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며 김단장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내게 했다. 최근엔 김학민 단장의 이런 뚝심을 믿고 지지하는 이의 문자까지 받았다고 한다. 친구가 아닌 일적으로 만난 지인의 문자는 ‘김학민 단장을 믿는다. 지켜 볼 것이다.’ 였다. 이는 김단장에게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게 없다’ 란 의미인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을 떠올리게 해 눈물이 나게 했다고 한다.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정신으로 걸어온 2년

“리스크를 걸 때는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리스 고두노프’가 그런 리스크가 걸렸던 하나의 작품이었던 게 맞아요. 정말 생소한 오페라란 점에서 모두들 반대했어요. 음악사에서는 높이 평가하는 작품이나,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변방의 오페라란 게 그 이유죠. 위대한 소수의 작곡가인 무소륵스키의 오페라를 왜 하느냐? 그럴 바에야 차라리 차이코프스키의 ‘오네긴’이 낫지 않냐는 의견이 다수였어요.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보다 무소륵스키가 100배는 위대한 작곡가란 믿음 만큼은 확고했어요. ‘오네긴’보다 ‘보리스고두노프’가 우리 국민들에게 천배 만배의 이유로 보여줘야 할 작품이다는 믿음 역시요. 게다가 스테파노 포다란 최고의 연출가와 함께한다면 더욱 잘 만들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가 컸죠. 그럼에도 국립이니까 해야 한다는 믿음과 뚝심으로 밀고 나갔어요. ‘보리스 고두노프’란 작품을 선택했듯 대중적 오페라, 숨겨진 좋은 오페라, 난이도가 있는 오페라 섹션으로 나눈 균형적인 레퍼토리 안배는 계속 해 나갈 예정입니다.

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한 장면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한 장면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한 장면


마지막으로 김단장의 연임문제에 대해 직접 의견을 물었다. 그는 “연임은 저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에 명확히 답변 드릴 게 없다”고 했다. 이어 “임기 기간 동안 모든 걸 다 완전하게 만족스럽게 할 순 없겠지만 우리의 방향성에 따라 지치지 않고 걸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단장직을 하고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눈 앞에 놓인 현안들이 너무 많지만 제가 더 해서 변화할 수 있고 매듭을 지을 수 있는 문제인지의 구별을 잘 해야 한다고 봅니다. 3년 이상 해야 다져질 수 있는 일이라면 더 해야겠죠. 그게 아니라면 욕심 부리고 싶지 않아요. 현명한 포용 능력으로 제 신념을 따라 나가고 싶어요.”

한편, 김학민 예술감독은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음악이론 석사를 마쳤으며,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에서 오페라 연출 실기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마술피리’, ‘나비부인’, ‘리골레토’, ‘세빌리아의 이발사’, ‘아이다’ 등 다수 오페라를 연출했으며,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등 뮤지컬 또한 연출 한 바 있다. 저서로는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오페라의 이해’ 등이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3일과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진주조개잡이‘를 끝으로 2016~2017 시즌을 마무리하고 야외오페라 ‘동백꽃 아가씨_La Traviata’(8월 25~26일 서울 올림픽공원 내 88잔디마당)와 베르디의 ’리골레토‘(10월 19~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등 새로운 레퍼토리를 들고 나올 계획이다.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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