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된 칸 영화제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옥자’(봉준호 감독)와 ‘그 후’(홍상수 감독)가 경쟁 부문에 나란히 올랐고,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과 ‘악녀’(정병길 감독)가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클레어의 카메라’(홍상수 감독)가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뤼미에르 극장 스크린을 수놓았다.
지난해 경쟁 부문에 ‘아가씨’(박찬욱 감독), 비경쟁 부문에 ‘곡성’(나홍진 감독),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부산행’(연상호 감독)이 선보여진 후 해외에서는 국내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올해는 장·단편 모두 한층 많은 수의 작품이 초청되는 쾌거를 거뒀다. 비경쟁 단편영화로는 ‘포구’(문재웅 감독) ‘아리’(구상범 감독) ‘블라인드 필름’(오재형 감독) ‘달이 차면 기울듯’(박동훈 감독) ‘김감독’(김미경 감독) ‘첫만남’(박재현 감독) ‘인터뷰: 사죄의 날’(배기원 감독) ‘미행’(음문석 감독) ‘아와어’(김준호 감독) 등이 소개됐다.
박찬욱 감독의 네임 밸류를 단 ‘아가씨’가 칸 필름마켓에서 해외 175개국 판매로 한국영화 최다 해외 판매 기록을 세운 영향도 컸다. 그 와중에 ‘부산행’의 156개국 판매 소식이 이목을 끌었다. 연상호 감독은 국내에서 ‘돼지의 왕’ ‘사이비’ 같은 애니메이션으로만 연출력이 검증됐던 바. 2012년 ‘돼지의 왕’이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적이 있지만, 실사 영화로는 처음으로 압도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당시 ‘부산행’은 ‘좀비스릴러’라는 지극히 장르적인 특색과 작품성으로 해외를 겨냥했다. 그리고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과 156개국 판매 소식이 들렸을 때 국내 대중들도 덩달아 시선을 모았다. 연상호 감독의 실사 장르극이 어떤 장점으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에서 사랑 받았는지 궁금증이 증폭됐다. 이는 곧 천만 관객 동원으로 효과가 입증됐다. ‘부산행’은 누적관객수 1150여 명으로 한국영화 역대 9위의 흥행기록을 달성했다. 지난해 개봉작 중 유일하게 천만을 돌파한 것.
작품성은 물론, 칸의 관심과 해외세일즈의 전략, 국내 홍보팀의 노력까지 모든 박자가 잘 들어맞았다. ‘부산행’은 칸 초청부터 해외 판매 성과, ‘좀비’에 거부감이 있던 국내 관객들에게 오히려 장르영화임을 강조하지 않은 치밀한 전략까지 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 같은 성공사례가 나옴으로써 개봉을 앞둔 국내 영화 중 작품성 있는 굵직한 작품들이 칸 필름마켓에서 먼저 소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부산행’의 NEW 해외세일즈 관계자는 당시 이례적인 판매 성과를 분석하며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적인 기본기와 부성애 등 한국적 드라마의 결합이 잘 통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국내 개봉 전 우선 해외 판매국을 늘려놓는 이 새로운 공식은 실질적인 판매 수익과 수치화된 홍보 수단으로써의 활용 모두로 이어지니 ‘일타쌍피’의 홍보법으로 제격이다. 실제로, 1만 3000여 명의 전 세계 바이어들이 몰린 이번 칸 필름마켓에는 CJ엔터테인먼트(‘불한당’ ‘군함도’ ‘골든슬럼버’ ‘침묵’ ‘7년의 밤’ ‘리얼’ ‘1987’ 등), 롯데엔터테인먼트(‘7호실’ ‘신과 함께’ ‘청년경찰’ ‘보안관’ 등), 쇼박스(‘택시운전사’ ‘살인자의 기억법’ ‘꾼’ ‘부활’ 등), NEW(‘악녀’ ‘강철비’ ‘장산범’ 등)와 더불어 화인컷(‘그 후’ ‘클레어의 카메라’ ‘하루’ ‘포크레인’ ‘유리정원’ ‘대장 김창수’ ‘V.I.P’ 등), M-LINE(‘대립군’ 등) 등이 칸 필름 마켓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의 탄력을 받아 올해 칸 필름마켓에서의 국내 작품 수요 역시 압도적인 성과를 이뤘다. 현재까지 ‘불한당’은 128개국, ‘악녀’는 136개국에 판매됐다. 칸 공식 초청작이 100개국에 판매되는 경우는 이제 일반적인 수준이다. 그만큼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올해 ‘악녀’까지 진출시킨 NEW 해외세일즈 관계자는 “‘악녀’는 하드코어 액션이라는 장르적 매력과 함께 초반의 화려한 액션신이 바이어들에게 어필됐다. 칸 현지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액션장르에 호감도가 높은 유럽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며 “이번에 함께 판매를 진행한 ‘강철비’는 최근 이목을 끌고 있는 남북 이슈 소재에 ‘변호인’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언급했다. 칸 초청작은 아니지만, 정우성·곽도원 주연의 ‘강철비’ 역시 올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힘과 동시에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떠올랐다.
관계자는 “세계 영화제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 진출작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만으로 큰 신뢰감을 가진다. 작년 ‘부산행’이 좋은 성과를 얻었던 것처럼 올해도 칸 후광효과를 통해 국내 영화시장 흥행까지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길 기대 한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해외 선판매가 이뤄진다는 것은 글로벌적으로 안전한 배급처를 확보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좋은 판매성과를 내고 있는 우리나라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해외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인정이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한국 영화가 전 세계에서 날로 각광받고 있는 만큼, 국내 시장에서의 활성화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한국 개봉 전 성사되는 해외세일즈는 긍정적 순환구조를 낳기에 앞으로 칸 필름마켓(해외마켓)의 문을 두드리는 영화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