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4대강 6개 보의 수문을 연 뒤 보 상류와 하류, 관개수로가 잘 갖춰져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주민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경남 합천군 덕곡면 주민 이모(65)씨는 “자칫 지역 주민들끼리 물을 확보하기 위해 큰 싸움이 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정부가 가뭄에 대한 농민들의 우려를 해소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수문을 연 것이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가뭄이 해마다 발생하면서 앞으로 이 같은 갈등이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줄어드는데도 정부는 국가 차원 대책의 밑그림을 그려놓지 않은 채 단기 대응책만을 되풀이하는 데 따른 결과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00년부터 올해까지 18년간 농업 가뭄이 발생한 해는 무려 12년이나 됐다. 3년 중 2년은 농민과 지역민 등 국민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받은 셈이다. 2000년 이전인 1980년부터 1999년까지 20년 동안 가뭄이 발생한 횟수는 6회로 최근 18년 동안의 절반에 그친다. 가뭄이 점차 상시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빈도뿐 아니라 가뭄의 정도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누적 강수량은 162.7㎜로 2000년(156.0㎜) 이후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평년(303.4㎜)과 비교하면 절반(53.6%) 수준에 머문다. 경기·충남·전남 지역의 농작물은 이미 말라가고 있고 일부 지역은 제한급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차원의 중장기 가뭄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올해도 가뭄 피해가 가시화하자 이제서야 정부는 ‘특별교부세를 집행하겠다’ ‘간이양수장과 관정 설치 등을 지원하겠다’는 등의 각종 단기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 이들 대책은 가뭄만 시작되면 늘 ‘재탕 삼탕’이 되는 것들이다.
정부가 그나마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도수로를 활용한 4대강 16개 보의 물 공급 △해수담수화 시설 및 지하수댐 건설 등의 방법으로 새로운 수자원 확보 △하수 정수 등을 통한 물 재이용 사업 등은 하나같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상만 공주대 교수(한국방재학회장)는 “기후변화·도시화 때문에 가뭄 등의 재난 진폭이 시공간적으로 매우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가뭄 대응은 홍수에 비해 굉장히 미약하다”며 “지금은 가뭄이 심해 다들 큰 관심을 갖고 항구적인 가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조만간 큰비가 오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잊어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임지훈·강광우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