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보다 부동산투기 바람에 흔들리는 ‘한국형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 부동산 PF대출은 시공사인 건설사와 금융주간사인 증권사의 신용보강을 바탕으로 기관투자가가 돈을 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냉각될 조짐이 보이면 기관투자가는 담보권을 행사해 사업권을 헐값에 팔아버려 시행사는 투자금을 날리기 일쑤다. 벼랑 끝에 몰린 시행사는 기관투자가에 대해 배임 논란을 제기하는 등 분쟁이 늘어가고 있다.
기관투자가 가운데 부동산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군인공제회는 배임 혐의로 경찰 구속까지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5일 군인공제회의 신모 건설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에 대해 배임 혐의로 구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공제회는 지난 2010년 쌍용건설을 시공사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8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개발 사업에 참여하기로 하고 한 중소시행사에 850억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이후 시장 상황이 나빠져 군인공제회가 해당 사업을 공매에 넘기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군인공제회는 2012년 쌍용건설이 자율협약에 들어가며 시공이 어려워지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악성 사업장으로 분류하고 2015년 5월 1,404억원의 가치인 사업을 475억원에 공매 처리했다.
시행사는 새로운 건설사·금융사와 함께 사업 재개를 추진했지만 이미 사업권이 헐값에 넘어갔다고 반발했다. 경찰은 군인공제회가 대출 원리금 929억원을 날린 과정에서 CIO 등이 불필요한 용역비 200억원을 책정하는 등 사업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내부를 설득해 사업을 포기시켰고 낙찰받은 새 시행사 대표와 현 CIO가 같은 건설사 출신으로 짬짜미했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
애초 사업에 참여한 시행사는 군인공제회로부터 연이자 10.5%로 대출받아 사업비를 투자했지만 군인공제회의 공매로 시행권이 넘어가며 투자한 278억원을 날리게 됐다고 주장한다. 특히 군인공제회가 사업주체자로서 시행사의 권한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사업비를 높여 사업성을 떨어뜨렸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반면 군인공제회는 쌍용건설의 신용으로 대출한 상황에서 쌍용건설이 빠져 사업성이 낮아졌고 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해 담보인 토지 등을 매각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기관투자가의 대출로 이뤄지는 부동산 PF의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행사는 투자 책임을 지지만 영세해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고 기관투자가는 개별 사업의 위험을 온전히 따지지 못한 채 계약을 맺으며 벌어지는 결과다. 한 공제회 CIO는 “공제회들이 부동산 사업은 업계 출신을 데려와 별도로 운영하는데도 파악하지 못한 사업 위험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고가 발생하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부동산 PF의 리스크가 증권사로 옮겨가고 있다. 건설사의 시공보강이 이뤄졌던 PF대출이 2010년 이후 증권사의 신용보강으로 바뀌며 부동산 시장 변동성 리스크가 증권사에 고스란히 전이됐다. 증권사는 미분양주택이 나올 경우에도 대출금을 갚겠다는 확약을 시행사에 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고 시행사는 이를 근거로 기관투자가로부터 대출을 받는 식이다.
이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는 증권사에 수수료 수익으로 돌아오지만 냉각돼 미분양이 급증하면 담보가치가 떨어지는 미분양주택을 증권사가 떠안는 결과를 가져온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중소형 증권사들이 앞다퉈 부동산 PF대출에 나서고 있다”며 “선순위 담보를 확보한 증권사는 괜찮지만 후발주자로 참여한 증권사들은 내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꺾이기라도 하면 대규모 우발채무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