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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14대문 종주] 메마른 도심 벗어난 15㎞ 옛길...발걸음 발걸음마다 '에코힐링'

시구문서 대서문까지 '12대문'에

일반에 덜 알려진 중성문 등 포함

발길 닿는 곳마다 조상의 숨결이

용혈봉~나한봉 이르는 초반코스

경사 가팔라 힘들지만 경관 수려

북한산 법용사 옆 샛길로 접어들어 잠깐을 가면 나타나는 국녕사에는 철 지난 철쭉이 흐드러져 있다.북한산 법용사 옆 샛길로 접어들어 잠깐을 가면 나타나는 국녕사에는 철 지난 철쭉이 흐드러져 있다.


■도심 속 일탈을 꿈꾼다면

‘멀리만 가야 여행일까.’


우리가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이다. 하지만 멀리 가야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다못해 비행기를 타고 제주라도 가야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이곳 서울을 도읍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한강유역을 놓고 피나는 전쟁을 되풀이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그동안 모스크바에서 아프리카 잠비아까지 40여개국을 돌아보았지만 자연경관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은 우리나라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큼 풍광이 수려한 곳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매일 사무실과 도심 속 도로에 염증을 느끼면서 서울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외곽의 북한산을 찾아보시라.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지난주 둘러본 북한산성 ‘14대문 종주’ 코스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조선시대 나라에 변란이 생길 때 임금이 피신하던 행궁이 있던 북한산성. 그동안 ‘12대문 종주’는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수문터와 중성문을 포함, 15㎞에 이르는 14대문 구간은 서울시민들에게도 비교적 새로운 코스라 ‘강추(강력추천)’할 만한 곳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미세먼지 경보가 내린 날 산행 일정이 잡혔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늘은 쾌청했지만 먼 곳의 시계는 불량했다. 걸음을 멈추거나 그늘로 들어가면 오싹한 한기가 밀려왔고 양지로 나가 걸으면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지도를 한 장 구입하면서 자원 봉사자에게 수문의 위치를 물어봤다.

시구문~북문~위문~용암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청수동암문~부왕동암문~가사당암문~대서문 12곳에 중성문과 수문터를 더해야 14대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문은 이제 남아 있지 않아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수문터는 등산로 옆에 있어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을 뿐이다.

수문은 성벽 아래에 문을 만들어 성안의 물을 외부로 흘려보내는 배수시설로 북한산성에 모두 두 곳이 있다. 탐방지원센터 초입과 중성문 근처에 있는 이 시설은 적의 침투에 대비해 철책을 세워 놓았었다고 기록돼 있다. 바위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구멍들은 철책이 박혀 있던 흔적인 듯싶었다.

다음 목적지인 중성문은 계륵이다. 산성을 따라 걷는 둘레코스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중성문을 거치려면 코스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게 번거롭다. 그나마 산행 초기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을 뿐이다. 만일 중성문이 코스 막판에 있었다면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서 간신히 들렀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하산했을 것이다.

시작 초기에는 코스의 난도도 만만치 않다. 용혈봉~증취봉~부왕동암문~나월봉~나한봉에 이르는 구간은 바위에 걸쳐진 난간이나 밧줄을 잡고 오르내려야 하는 만큼 힘이 있는 초반에 주파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용출봉에서 용혈봉가는길용출봉에서 용혈봉가는길


법용사 옆 샛길로 접어들어 잠깐을 가면 나타나는 국녕사에는 철 지난 철쭉이 흐드러져 있었다.

국녕사를 지나 세 번째 대문인 가사당암문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용출봉과 용혈봉으로 오르는 길은 길이랄 게 없고 커다란 바윗덩어리에 밧줄을 이어놓은 코스다. 사진을 찍으려고 어깨에 둘러멘 카메라는 걸을 때도 무겁지만 비탈을 오를 때는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카메라가 덜렁거리면서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얼마짜리 카메라인데…. 주인 잘 못 만나서 고생하는구나.’

그렇게 한 손으로 카메라를 감싸고 한 손으로 밧줄에 매달려 오르내리기를 몇 번. 유격훈련 같은 산행이 마무리되고 평지나 다름없는 대남문 일대에 당도했다.


대남문의 이름에 남녘 남(南)자가 들어간 것은 이 문이 북한산성 행궁을 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이나 남한산성 안에 행궁이 있는 것과 같이 북한산성에도 1915년까지 행궁이 있었다. 행궁은 변란이 일었을 때 왕이 피신하는 임시거처로 숙종과 영조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행궁은 1915년 7월에 내린 폭우로 발생한 산사태에 매몰돼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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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산’ 북한산

북한산은 설악산·한라산과 더불어 온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 중 하나다. 국토의 심장부인 서울에 인접한데다 높지는 않지만 도봉산·사패산 등과 능선을 잇고 있어 영동의 어느 국립공원 못지않은 위세를 자랑한다.

대동문은 멸실됐던 것을 1993년에 복원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다.대동문은 멸실됐던 것을 1993년에 복원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다.


이런 까닭에 북한산을 거미줄처럼 잇고 있는 웬만한 등산코스는 일반에게 대부분 알려져 있다. 산 좀 타는 등산 애호가 중에는 북한산을 씨줄 날줄로 엮듯이 섭렵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하늘 아래 새것 없다’는 속담처럼 이번에 기자가 섭렵한 북한산 14대문 종주 코스도 하늘에서 떨어진 코스는 아니다. 하지만 12대문 코스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수문터와 중성문이 포함된 14대문 코스는 비교적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중성문과 수문터는 산성에서 떨어져 있어 이 두 포인트를 포함시키면 코스에서 벗어났다가 되돌아올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14대문 코스가 그동안 외면받아왔던 이유다.

이런 고생을 각오하고 시작한 산행이 멈춘 것은 정오 무렵 대남문 근처에서였다.

동장대는 동쪽에 있는 장대라는 의미로 전투가 시작되면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축조해놓은 지휘소다. 북한산성에는 동장대·남장대·북장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동장대만 남아 있다.동장대는 동쪽에 있는 장대라는 의미로 전투가 시작되면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축조해놓은 지휘소다. 북한산성에는 동장대·남장대·북장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동장대만 남아 있다.


오전에 험한 코스를 주파해서 기운이 바닥났다. 그늘로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걷기를 멈춘데다 바람까지 불어 흐르던 땀은 가시고 이내 추워졌다. 간사한 게 인간이라더니 30분도 안 돼서 햇볕이 그리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대성문으로 향하는 길은 산성을 따라 걷는 길이라 오전 코스에 비하면 산책 수준이었다.

이후 이어지는 보국문~대동문~동장대~용암문~위문~약수암~대동사~북문~원효봉~원효암 코스는 어려울 게 없다.

위문에 다다르자 백운대와 인수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구간에서는 내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산을 올랐다. 위문에서 백운대를 찍고 내려올지 잠깐 고민을 하다가 바로 대동사로 방향을 잡았다. 이미 체력이 많이 소진돼 발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에 동행하면서 안내를 한 조병이(55)씨는 마라톤 풀코스를 30여차례나 완주하고 5산종주(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를 20시간 이내에 주파한다고 해서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을 가진 회사원이었다. 이미 다리가 무거웠지만 이 ‘에너자이저’는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위문에 도착할 때까지는 자존심 때문에 “쉬어가자”는 말이 안 나왔는데 산행 누적거리가 12㎞를 넘어서자 30분이 멀다 하고 “쉬어가자”고 그를 졸랐다.

그래도 북문을 지나서 원효봉·원효암까지는 그런대로 버틸 만한 산행이었다.

그런데 원효봉을 내려오면서 조씨가 길을 잃었다. 산성 틈을 비집고 내려가는 낌새가 수상하더라니 좁은 샛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30~40분이면 시구문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행이 계속됐다.

하산 길을 잃어 신둔계곡으로 잘못 내려가는 통에 그나마 남아 있던 체력마저 고갈돼버렸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보폭이 짧아졌다. 산 아래 도로로 자동차들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큰길은 보이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며 산길을 내려왔더니 이미 마지막 목적지였던 시구문은 많이 지나치고 말았다. 조선 말엽 조성된 내시 묘를 지나서 북한산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길은 겨우 1㎞ 남짓이었는데 그 길조차도 길고 길게 느껴졌다.

탐방지원센터로 가는 도중 벤치에 앉아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백운대와 인수봉·만경대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조씨는 “북한산의 별칭이 삼각산인 것은 이들 세 봉우리가 삼각형처럼 버티고 서 있는 모습에서 연유한다”며 “예전에는 봉우리에 아이를 업은 모습의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불렸다”고 말했다.

두어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가 하는 설명을 녹음하고 귀담아듣느라 촉각을 세웠었는데 이제는 진이 빠진 내 귓전으로 그의 말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도착한 탐방지원센터 입구로는 아침나절 산으로 향했던 인파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위문 앞에서 바라본 백운대의 전경.위문 앞에서 바라본 백운대의 전경.


휴대폰의 운동량 측정 애플리케이션을 열어보니 하루 동안 걸어온 거리는 16.32㎞, 소모열량은 1,164㎉, 운동시간 8시간 51분, 휴식시간은 1시간 58분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벗어 던지고 맥주를 시켰다.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자 목의 울대가 따라 움직였다. 빈 맥주잔을 상 위에 내려놓는 순간, ‘체내의 수분이 땀으로 날아가 하루 종일 볼 일을 안 보았구나’하는 부질 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글·사진(고양)=우현석객원기자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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