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마음 둘 곳 없는 보수의 행로

온종훈 논설위원

洪, 보수후보 최저 득표에도 '환대'

친박은 날 선 비판...당 내홍 심화

지지율 한자릿수 불과한 한국당

보수 대표정당 살아남으려면

당론·가치 재정립 전면 혁신해야



지난 4일 오후 인천공항은 북새통을 이뤘다. 지지자로 추정되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 이날 귀국하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이름을 연호했고 홍 전 지사는 환영인파에게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사례했다. 짤막하게나마 대선 패배에 대한 사과와 함께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함께하겠다”고 했다. 홍 전 지사가 대선 패배 후 사흘 만인 5월12일 미국으로 떠난 후 20여일 만의 귀국인데 앞뒤 맥락 없이 보면 마치 선거 출정식을 보는 듯했다.

예상대로 홍 전 지사의 귀국은 자유한국당 내 지형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홍 전 지사는 귀국 다음날 페이스북에 “패장이 귀국하는데 환영하러 나온 인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만큼 마음 둘 데 없는 국민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올렸다. 당내에서는 7·3 전당대회에서 홍 전 지사의 당권 도전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러다 보니 홍 전 지사와 각을 세워왔던 당내 친박근혜계는 즉각 ‘홍준표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친박계 원로인 홍문종 의원은 “한국당이 왕따되는 길을 그분이 선택하고 있다”며 대선 기간 친박계를 ‘바퀴벌레’라고 비유했던 홍 전 지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홍 전 지사의 귀국과 한국당 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소동은 우리 사회 보수지지층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선에서 불과 24%를 얻은 후보에 몰린 지나친 환대와 또 이를 견제하고 나선 당내 경쟁그룹들의 양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홍 전 지사가 말한 “마음 둘 곳 없는 국민”은 구체적으로 보면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의미한다.

홍 전 지사가 얻은 24%의 지지는 역대 보수정당 후보가 얻은 가장 낮은 득표다. 예전 같으면 고작 이 정도 득표를 한 후보는 당권 도전은 고사하고 정계를 은퇴해야 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 상황은 이 정도 득표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홍 전 지사가 그나마 ‘활로(活路)’를 열었다는 것이 평가의 핵심이다. 그러나 홍문종 의원의 “애들 말마따나 착각은 자유”라고 했듯이 이는 오롯이 홍 전 지사의 몫도 그렇다고 박 전 대통령의 몫도 아니다.


대선 후 보수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이 ‘대안’이다. 정권은 넘어갔더라도 내년 지방선거와 3년 후 총선, 그리고 5년 후 대선까지 이어갈 구심점과 지도 체제에 관한 고민이다. 그러나 이는 대선 패배에 대한 원인분석과 결과를 오독(誤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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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은 크게 보면 보수 정권 10년에 대한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다. 어느 한 곳에 과반을 허용하지 않은 대선결과는 거꾸로 보면 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진영에 대한 전체 부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평가에는 보수를 대표해온 정당인 한국당의 지향과 구체적 대안 제시가 마땅하지 않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일자리로 대변되는 사회와 계층, 세대 양극화에 대한 한국당의 해법에 유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당이 보수 대표정당으로 살아남는 길은 당 체제 전반을 재구축하는 길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던 당의 가치 지향을 재구축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외교·안보, 경제·사회 등 전반에 대한 당론을 재정립해야 한다. 재벌개혁에 반대하려면 비정규직 등 소득 양극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안보에 있어서도 한미 동맹과 대중국 외교 사이에서 선택적 상황이 아닌 ‘제3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당의 모든 정치행위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칠 수밖에 없다.

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은 홍 전 지사가 대선에서 얻은 득표에 훨씬 못 미치는 한자릿수다. 다르게 얘기하면 그나마 홍 전 지사를 지지했던 보수 유권자마저 한국당을 외면하는 결과다. 이대로 가다가는 ‘소멸’하거나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처럼 ‘멸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jhohn@sedaily.com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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