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황석영 "한반도라는 '감옥'서 작가는 자유로울 수 없어"

자전 '수인' 출간 기자간담

"언어의 감옥·냉전 박물관에 살며

사회·역사적 책임 벗고 싶었지만

해방될 수 없는 속박서 죽을 듯해"

광주항쟁 이어 방북·망명·투옥…

생사 넘나든 격렬한 시기 담아

개인 생애 넘어 민초의 시대 증언

소설가 황석영이 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자전 ‘수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문학동네소설가 황석영이 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자전 ‘수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엄처시하’의 감옥에서 나는 늘 사회적·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작가는 무엇에서도 해방될 수 없었지요. 나는 말년까지 속박 속에 살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수인’입니다.”

소설가 황석영(74·사진)이 유년시절부터 베트남전쟁 참전, 광주 민중항쟁, 방북과 망명, 수감 생활에 이르는 그의 생애를 담은 자전(自傳) ‘수인(문학동네)’을 펴냈다. 8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황 작가는 “이렇게 자전을 쓰고 보니 한 걸음도 편한 적 없고 화살처럼 달려온 인생이었다”며 “이 책은 해방 이후 한국 전쟁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민초들이 살아온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 작가의 자전은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다. 소설 외의 글은 되도록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더해 개인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기 싫어한 그가 지난 2004년 자전 집필에 착수한 것은 한 일간지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객관화하기 어렵다며 1976년 ‘장길산’ 집필을 위해 해남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중도에 포기했다고 한다. 그를 다시 움직인 것은 강태형 문학동네 편집위원이었다. 결국 2013년부터 묵혀둔 원고를 들여다보며 황 작가는 한국 현대사에는 물론 문학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다시 자전을 집필하기로 결심했고 광주항쟁부터 이어진 방북과 망명, 투옥까지 그의 삶에서 가장 격렬했던 시기를 2,000장의 원고지에 담았다. 6,000장까지 불어난 전체 원고를 편집자 출신인 황 작가의 아내와 강 위원이 편집을 맡아 4,000장으로 줄였고 각각 ‘경계를 넘다’ ‘불꽃 속으로’라는 부제에 두 권으로 출간됐다. 황 작가는 “강력한 두 편집자는 내가 잘난 척한 부분 위주로 잘라냈고, 덕분에 처절하게 부딪혀 깨지고 좌절한 과정만 남게 됐다”며 웃었다.


책은 방북과 망명 이후 귀국하면서 곧바로 안기부에 끌려가 수사관들에게 취조당했던 1993년의 일로 시작된다. 마치 좁은 감옥에 수감된 채로 살아온 생애를 더듬어보듯 감옥 안의 삶을 중심 서사로 해 유년부터 망명 시절까지 그가 겪은 삶을 문학적 필체로 교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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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인 작가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그는 감옥에서 나온 1998년의 이야기를 꺼냈다. 황 작가는 “58세의 사내가 감옥에서 나오니 통장 잔액 76만원에 오갈 데도 없었는데 문단에서는 내가 글을 못 쓸 거라고 소문이 파다했다”며 “하지만 나는 노름꾼이 돈을 다 잃고도 새벽 끗발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독자들이 날 먹여 살릴 테니 써야 한다고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베트남 참전 시기 생사의 고비에서도, 수감 시절 20여일을 단식하면서도 그는 “반드시 살아남아 이것을 글로 쓰겠다”며 버텼다고 했다. 그렇게 황 작가는 계속 썼다. “먼 길을 다녀왔어도 집에 다시 들어가듯 문학을 집 삼았고 삶과 작품을 일치시키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이번 자전에 석방 후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 2권 말미의 에필로그에서는 “내 안에서 삭일 시간이 필요한 때문”이라고 썼다. 결국 남은 그의 생애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일은 후대에 남겼다. 황 작가는 “자전이 끝난 후의 20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게 될 10여년의 세월은 내 몫이 아니고 내 이웃이나 후배나 다른 사람의 몫”이라며 “누군가 평전으로 나를 기억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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