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환원 등 가계부채 관리 대책, 투기과열지구 지정 및 전매제한 지역 확대 등 세 가지로 압축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은 물론 정부 당국 안팎에서도 시장 상황을 감안한 ‘핀셋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 시장 과열 양상이 일부 지역에 국한된 상황에서 전면적인 부동산 규제책은 자칫 실수요자들에게도 타격을 입혀 시장이 급랭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9일 금융 당국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 진정책으로 가장 먼저 쓸 카드는 LTV 및 DTI 환원이다. 은행 등 금융회사가 대출할 때 한도를 정하는 기준인 LTV·DTI는 2014년 8월 완화됐다. LTV는 50~60%(은행·수도권 기준)에서 70%로, DTI는 50%(은행·서울 기준)에서 60%로 상향 조정됐다. 오는 7월 말로 완화 기간이 끝나 8월부터 이전 수준으로 환원된다.
하지만 모든 대출자에 강화되는 비율을 적용할 경우 상당한 부작용이 나올 것으로 우려된다. 실수요자들의 ‘대출절벽’과 함께 2금융권으로 수요가 몰려 부채의 질이 더욱 악화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LTV가 60%를 초과하는 주택담보대출은 113조원을 넘는다. 전체 주담대의 35% 수준이다. ★본지 6월8일 1면 참조
LTV 환원 후 이만큼의 수요가 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럴 경우 경기 회복을 이끈 부동산 시장에 다시 찬바람이 불 수도 있다.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LTV·DTI 일률 적용이 아닌 선별적 규제 필요성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부작용을 고려한 조치다. 하영구 은행연합회 회장은 최근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나 청년들에게는 규제를 완화하고 투기 목적의 구입자에 대해서는 기준을 강화하는 등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며 “이는 새 정부가 가계부채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뜻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도 이런 분위기를 고려해 LTV·DTI 일괄 강화가 아닌, 실수요자에게는 비율을 오히려 완화하고 투기 세력에는 강화하는 ‘핀셋’ 규제를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8월 이전으로 일률적으로 되돌리는 것은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를 어렵게 하는 동시에 은행 밖 대출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LTV·DTI 차등 적용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인다”면서 “거주목적·지역 등에 대한 선별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 강화, 청약 요건 강화 등 10여 개의 고강도 규제를 포함하는 투기과열지구 지정과 같은 초강수 대책은 시장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볼 때 이 같은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특히 지금과 같이 수도권과 지방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더 섬세한 핀셋 규제를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신규 공급 분양 받을 자격을 제한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신규 공급이 주춤하게 되고 이에 따라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며 “과도한 규제는 시장의 순기능을 망가뜨리고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로 단기간은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정부의 규제가 ‘공급 감소→가격 상승→대량 공급→미분양 및 미입주 증가→가격 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시장은 행정구역 단위가 아닌 생활권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설픈 규제를 내놓았다가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며 “규제를 내놓더라도 지역은 물론이고 규제 강도 측면에서도 보다 세밀한 핀셋 규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11·3 대책의 핵심이었던 전매제한 적용 대상 지역을 확대하는 방안 역시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다. 최근 시장 과열이 단기 차익을 노린 부동자금이 몰렸기 때문인 것으로 전매제한 확대로 돈의 흐름을 차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최근 강남권 분양 열기에서 나타나듯이 전매제한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 있어 꼭 필요한 지역만 골라 정밀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부산과 세종시 등 과열 분위기가 감지되는 지방 일부 지역이 대상지로 떠오른다.
또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00년대 중반 버블세븐 시기를 비롯해 정부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때마다 규제 대책을 내놓았는데 실제로 효과는 크지 않았고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거시경제 여건이 좋지 않고 향후 금리 인상이라는 변수도 남아 있어 정부의 규제까지 맞물리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보리·고병기기자 bor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