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권 보수당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협상력 강화를 위해 명운을 걸고 추진했던 ‘조기총선’ 카드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영국 정치권이 또다시 지각변동에 휩싸이게 됐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총리직을 유지하며 보수당 소수정부를 이끌겠다는 입장이지만 그를 겨냥한 ‘책임론’이 부상하는데다 제2당인 노동당이 크게 세를 불리면서 정국 해법도 복잡해졌다.
9일 영국 총리실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이날 총선에서 10석을 획득한 북아일랜드 중도 우파 민주연합당(DUP)으로부터 총리 신임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 소수당 정부를 출범시키기로 하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정부 구성 권한에 대한 승낙을 얻었다. 보수당과 DUP 의석을 합하면 과반이 되지만 총리는 연정 대신 정책합의 방식의 소수당 정부를 택했다. 과반 정당이 없는 ‘헝 의회(Hung Parliament)’에서 제1당이 정부를 출범시키려면 연정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하거나 다른 정당과의 정책합의로 총리 신임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야 한다.
보수당 소수정부 출범으로 영국 정치권은 심각한 혼란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보수당과 DUP의 협치는 사안별 합의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여 양당 주도의 책임정치가 구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양당은 국경통제권을 둘러싼 브렉시트 정책에서도 입장차를 보인다. 게다가 261석을 확보하며 사실상 총선 승리의 주역이 된 노동당이 보수당과의 팽팽한 대치를 유도하며 정국을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압도적’ 승리에 실패한 메이 총리에 대한 사퇴 여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총리가 ‘하드 브렉시트(유럽연합 단일시장 접근권을 포기하는 대신 국경 통제권을 회복하는 전략)’를 고집해온 만큼 총선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브렉시트 논의에서 국면 전환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이날 “누가 선거에서 이겼는지 자명하다”며 “메이 총리가 새로운 정부를 위해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총리 사퇴를 압박했다. 조지 오즈번 전 재무장관도 “메이 총리가 장기적 관점에서 보수당 당수로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을 연기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사퇴 불가를 고집하고 있지만 영국 언론들에서는 벌써 차기 총리 후보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메이를 대체할 가장 강력한 총리 후보로는 브렉시트 협상의 주축으로 보수당 유권자의 탄탄한 지지를 받는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이 꼽힌다. 이 밖에 메이 총리의 최측근이자 진보적 성향이 강한 앰버 러드 내무장관도 하마평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