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히트작 라라랜드 La La Land와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크래프티 에이프스 Crafty Apes 스튜디오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자.
2016년 영화 가운데 라라랜드만큼 엄청난 칭찬 세례를 받은 작품은 거의 없었다. 아카데미 14개 부문 후보에 올라 타이 기록을 세운 이 뮤지컬 로맨스는 지난해 가장 많은 화제를 모은 장면 중 하나로 시작된다: LA의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5분 동안 춤과 노래가 펼쳐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화제성에 비해 그 장면을 만들어낸 시각 효과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크래프티 에이프스는 이 장면을 위해 연속 컷을 모두 이어 붙였다. 카메라가 댄서와 자동차 위, 현란하게 묘기를 선보이는 자전거 부대를 넘나들었다. 이 컷들이 다 이어져 화려한 테이크 *역주: 영화에서 카메라를 중단시키지 않고 한 번에 찍는 장면 로 촬영된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일반적으로 시각효과를 사용할 땐 보통 한 장면이 120 프레임 정도로 촬영돼 그 길이가 몇 초에 불과하다.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은 8,000 프레임이 넘는데, 여기에는 수백 번의 컴퓨터 렌더링 rendering *역주: 그림자와 색상, 농도의 변화 같은 3차원 질감을 넣어 컴퓨터 그래픽에 사실감을 추가하는 과정 작업과 수천 기가의 데이터가 소요됐다. 크래프티 에이프스는 촬영에 쓰인 트럭과 영화 장비를 장면에서 삭제하고, 그 자리에 댄서들과 자동차를 추가했다. 그렇게 수 마일 도로 위에 길게 늘어선 것처럼 장면을 연출했다. 후반 작업에선 일부 댄서들의 하의 색상을 바꿔 의상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크래프티 에이프스의 공동창립자 팀 리두 Tim LeDoux는 “시각효과가 없었다면 전혀 다른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라라랜드 배급사 라이온스게이트 Lionsgate의 사내 효과팀과 함께 영화의 시각효과를 담당했다.
크래프티 에이프스의 디지털 기술이 성공적으로 들어간 작품은 라라랜드 뿐만이 아니다. 이 회사는 2014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노예 12년(12 Years a Slave)과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한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히든 피겨스(올해 개봉) 등 다른 아카데미상 후보작에도 참여했다. 회사는 지난해 다른 특수 효과 스튜디오들과 함께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Captain America: Civil War와 닥터 스트레인지 Doctor Strange 작업에도 동참했다.
2011년 개봉작 휴고 Hugo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벤 그로스만 Ben Grossmann 감독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크래프티 에이프스 같은 회사들은 고예산 영화에서 공동 작업을 한 더 큰 규모의 라이벌 회사들에 가려 시상식 시즌에 자주 빛을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 닥터 스트레인지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후보에 올랐지만, 그 영화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은 크레이프 에이프스가 아닌 다른 주요 시각효과 업체들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제작 예산은 1억 6,500만 달러로 알려져있다. 반면 라라랜드의 예산은 3,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로스만은 크레프티 에이프스가 저예산 영화에 참여해 한정된 디지털 효과를 사용하는 배경에 대해 “이런 종류의 작업에는 일종의 집착에 가까운 열정이 필요하다”며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크레프티 에이프스는 2011년 설립됐다. 둘 다 경력 있는 시각효과감독이면서 친형제인 팀 Tim과 크리스 Chris(성은 리두 LeDoux), 이 회사의 제작책임자인 제이슨 샌퍼드 Jason Sanford가 공동 창업했다. 회사는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에 주력하는 대규모 효과 스튜디오와는 달리, ‘2D 합성’ 전문의 소규모 고급형 스튜디오다. 2D 합성은 다양한 원본(별개의 카메라 촬영 장면들)에서 이미지를 추출, 하나의 장면으로 합성하는 기법이다. 회사는 LA와 애틀랜타에 약 3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샌퍼드는 “회사 창립 이후 매년 직원 5명 정도를 신규 채용하고 있으며, 매출은 매년 2배씩 증가해왔다”고 말했다.
크레프티 에이프스는 올해도 점진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선 결코 작지 않은 성과라 할 수 있다. 기존 특수효과 스튜디오 수십 곳이 지난 10년간 실패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업계 대형업체 중 다수는 LA를 떠나 세제 혜택을 대폭 제공하는 밴쿠버와 런던 등으로 이전을 했다.
크레프티 에이프스 같은 소규모 고급형 특수효과 업체들은 할리우드 제작사들과 물리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에 LA에서 계속 사업을 하며 혜택을 보고 있다. 그러나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그 결과 영화 제작사가 지불하는 금액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크레프티 에이프스는 애틀랜타 인근의 영화제작 활성화로 수혜를 입었다. 조지아 주가 현지 프로덕션 업체에 상당한 세제 혜택을 제공한 덕분이다. 히든 피겨스의 감독 시어도어 멜피 Theodore Melfi는 크레프티 에이프스를 고용한 이유로 “훌륭한 실력”과 “애틀랜타에 상주 사무실을 둔 몇 안 되는 효과업체 중 한 곳”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 영화는 애틀랜타 근처에서 촬영됐다.
크리스 리두는 애틀랜타에서 팀을 꾸려 히든 피겨스 효과 작업을 했다. 이 작업에는 우주 발사와 우주 여행 시뮬레이션 작업이 포함됐다. 그는 국제우주정거장 (International Space Station)에서 찍은 실제 지구 장면과 NASA가 만든 우주 캡슐 도면을 합쳐 영화 속 장면들을 더 실감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크래프티 에이프스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 카펫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이 회사는 아카데미상 후보작들과의 연관성을 앞세워 재정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리두는 “라라랜드와 히드 피겨스에 참여한 경력 덕분에 직접 고객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감독과 제작자들이 그의 회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도 말이다.
리두는 “(우리와 연이 닿으면) 당신은 곧바로 우수한 품질과 뛰어난 결과물에 가까워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TOM HUDDLESTON J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