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美 기준금리 인상] 금리인상 압박 커진 한은...내수·가계빚·추경 '고차방정식' 풀까

경제 기지개 불구 수출만 호조...내수는 여전히 꽁꽁

성급히 긴축 땐 가계빚 뇌관 건드려 추경 효과 반감

민간소비 마이너스 회귀·부동산에도 악영향 우려







미국이 금리(1.0~1.25%)의 상단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1.25%)까지 끌어올리면서 사실상 우리나라의 원론적인 통화완화 정책은 강제 종료를 해야 할 환경에 처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체질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이 본격적인 긴축에 돌입한 지난해 12월 시중은행의 대출 평균금리는 3.35%에서 올해 4월 3.39%까지 뛴 것처럼 시중금리부터 상승하기 때문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움직이지 않고 시장에 구두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고 신호를 줘도 시중금리가 계속해서 오르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 상황이 보다 뚜렷하게 개선되면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하다”며 긴축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한은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장이 금리를 위쪽으로 밀어 올리고 있어서다.


한은은 1999년 5~6월, 2005년 6~8월 한미 간 금리가 같았을 때 예외 없이 2~7개월의 시차를 두고 금리를 인상해왔다. 미국과 금리가 역전된 상황이 오래가면 글로벌 자금이 자연스럽게 안전자산이자 더 높은 금리를 주는 미국 시장으로 이탈할 것을 우려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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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도 금리 인상을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경제는 표면적으로는 회복하고 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호황으로 올 들어 매월 수출이 두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이며 1·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1.1%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2%대 성장률을 탈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하지만 대외적인 금리 인상 압력과 경기 회복세를 자신해 금리 인상이라는 ‘축포’를 터뜨리기는 성급한 상황이다. 금리로 경기를 조절하는 통화정책은 경제 전반에 무차별적으로 파장을 미친다. 특히 가계부채는 금리 인상이 불을 붙일 폭탄의 뇌관이다. 현재 가계부채는 1,360조원에 육박해 사상 최대다. 저신용(7~10등급)과 저소득(하위 30%) 등 취약차주의 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 78조6,000억원에 달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높아진 시중금리에 한은이 금리를 인상한다면 가장 먼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할 수 있다. 한계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층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지면 1년 연속 0%대의 증가율을 보이는 민간소비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 올해 금리를 인상하면 11조원대의 추경예산을 편성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부의 정책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 금리 인상의 직격탄은 저소득층이 맞는데 추경은 소득 하위계층의 소득 개선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고형권(오른쪽 두번째) 기획재정부 1차관이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2차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연합뉴스고형권(오른쪽 두번째) 기획재정부 1차관이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2차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빠른 금리 인상은 1·4분기 수출과 함께 1%대의 성장률을 이끌었던 부동산 경기를 꺼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소득 중상위 가구의 이자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9월 금리를 올리더라도 한은이 일정 기간 금리 역전을 허용하며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인 자금은 금리 역전에 더해서 한국 경제의 회복이 더디다고 느낄 때 이탈한다”며 “섣부른 금리 인상으로 내수를 꺼뜨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금리 역전→외국인 자금이탈’이 아니라 ‘금리 역전→한은 금리 인상→내수 위축→성장률 둔화→외국인 자금이탈’이라는 설명이다.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금리를 따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정부와 ‘폴리시믹스(policy mix·정책조합)’를 통해 금리 인상 압박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기 상황을 지켜보며 내년쯤 금리 인상을 모색해도 된다”며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정책적인 차원에서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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