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규리의 ‘몸의 소통’이 통했다. 댄스 시어터 ‘컨택트’로 처음으로 무대에 선 김규리는 매회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좋은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 신비한 노란 드레스의 아우라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을 정도.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규리는 “심장이 머리 꼭대기까지 와 있을 정도로 너무 떨렸어요.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기억이 안 났지만 무사히 공연히 마쳤어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댄싱 위드 더 스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열정적인 춤꾼의 면모를 보인 ‘김규리’는 맨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무대 공연 앞에서 더욱 뜨거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간절했고, 더 의지가 불타올랐다. 게다가 첫 무대 공연에서 힐을 신고 춤을 춰야 했다. ‘고군분투’ 했다고 전했지만, 그 누구도 그가 댄스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힐을 신고 춤을 춘다는 게 정말 어려워요. 기본기가 부족한 저에겐 턴을 하거나, 다리를 찢는 무용 동작도 힘들지만 다리에 힘을 기르는 것부터 힘들었어요. 다리에 힘을 기르지 않으면 무대 위에서 비틀거리게 되거든요.
“단단한 벽을 맨 속으로 밀고 있는 기분”
‘댄싱 위드 더 스타’ 땐 함께하는 남자 무용수가 제가 동작을 잘 할 수 있게 잘 도와주셔서 전 버티면 됐거든요. 제가 못해낼 것 같은 동작이면, 어렵지 않은 화려한 동작으로 바꿔주셨어요. 반면에 이번엔 안무가 정해져 있어서 무조건 해야 해요. 정말 초반엔 ‘내가 왜 하겠다고 했을까?’란 자책도 잠시 했지만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 있어서 힘을 내고 있어요. 정말 방을 크게 만들겠다고 단단한 벽을 맨 속으로 밀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꿈쩍도 하지 않던 방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어요.(웃음)“
만남과 소통을 소재로 하는 일종의 댄스 퍼포먼스 ‘컨택트’는 넘버의 가사 없이 ‘춤’과 ‘움직임’으로만 표현해내는 작품.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는 사람,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김규리는 마지막 세번째 에피소드 ‘컨택트’에서 등장한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그네타기’, 두번째 에피소드는 ‘당신 움직였어?’이다.
김규리는 김주원과 함께 전형적인 뉴욕의 독신 남성인 ‘마이클 와일리’(배수빈 분)가 재즈바에서 우연히 만난 이상형의 여인 ‘노란 드레스’로 나선다. 그녀는 비치보이즈 등 귀에 익숙한 음악에 맞춰 스윙 댄스, 로맨틱한 눈맞춤의 순간을 몸의 언어로 담아낸다. 김규리의 숨결을 입은 ‘노란 드레스’ 여인은 도도함이 넘친다.
“언니가 우아하고 부드러운 멋이 있다면 저는 좀 더 에너지 있고 도도한 매력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실 전 언니에 비해 한참 부족해요. 저를 믿고 하고 싶은대로 한 거죠. 그랬더니 세상에서 가장 도도한 여자가 나왔어요. 내 안에 숨어있는 뻔뻔하고 도도한 누군가가 튀어나온거죠. 사실 언니의 무대를 보면서 언니 발끝도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평소 김주원 배우에게 항상 들어왔던 ‘컨택트’라는 작품에 직접 참여하게 되어 너무나도 설렌다는 그는 절친 김주원씨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었다.
“언니가 7년 전에 했던 작품이고, 그 누구보다도 ‘컨택트’란 작품. 그 중에서도 ‘노란 드레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가 언니라 많이 도와줬어요. 처음엔 언니만큼은 정말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고 겁이 났어요. 그런데 언니는 ‘너는 내가 아니잖아. 너만의 노란드레스를 찾아낼거야.’ 라면서 격려를 해줬어요. 고마운 언니죠. 언니랑 같은 역할로 해본 캐릭터로서 의의도 있기 때문에 참 고맙고 뜻 깊은 작품이에요.”
“몸의 언어를 사랑해요”
김규리는 춤과 움직임으로 소통 하는 몸의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 돼 있었다. 특히 무용수를 사랑하고, 몸의 언어가 가진 힘을 믿었다. 몸으로 전달할 수 있는 소통은 그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겼다.
“무용수가 너무 좋아요. 무용 작품을 보는 것도 되게 좋아요. 몸의 언어를 사랑하는거죠. 전 배우잖아요. 배우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게 말이나 언어 뿐 아니라 눈빛, 몸의 리듬까지 다양하잖아요. 그걸 통틀어 연기라고 해요.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면 모든 게 다 이어져 있어요. 리듬감 역시 또 다른 언어란 걸 실감하고 있어요. 넌버벌 뮤지컬 ‘점프’ 같은 경우에도 말이 없는데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잖아요. 그게 가장 장점이죠. 오래 전에 ‘점프’를 보고 깔깔 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나요. 할아버지가 비틀 비틀 거리면서 가는데 그 리듬감이 대단했어요. 외국인들도 보도 ‘빵’ 터졌어요.”
그는 공연의 매력에 대해 하나 하나 느끼면서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에서 매회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건, 이 한 번의 공연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점이요.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다시 오지 않을 스텝을 내딛는구나고 생각해요. 그게 정말 가슴 떨리게 하지만, 다음 공연이 있다는 점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을 대하는 느낌이에요. 이 무대를 보기 위해 오시는 분 들을 위해 엄청난 땀을 흘리고 있어요. 그 땀이 헛되지 않았으면 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더 노력하고 보완해서 다음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다시 뭔가를 해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노력하면 다시 성장할 수 있다는 기회가 있다는 게 방송과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요.”
단단해진 김규리, “나와 소통하고 싶었고,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
20년간 배우의 길을 걸어온 김규리(39)는 영화 ‘화장’ ‘사랑해 진영아’ ‘또 하나의 약속’ ‘풍산개’ ‘인류멸망보고서’ 드라마 ‘우리 갑순이’ ‘왕의 얼굴’ ‘무신’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점점 나이들어가는 게 기대된다”고 말하는 그는 세월과 함께 단단해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속박이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요. ‘여배우’라는 칭호가 주는 구속이 늘 답답했어요. 그런 시선으로부터 멀어지고 나니, 제 스스로 나이 먹는 게 편해져요. 웃으면서 생긴 예쁜 주름들도 좋아요. 서른 살 이후부터 쓸데없는 겁을 내려놓고 보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어요.
어른이 된 거냐? 물어보신다면, 아직도 어른이라고 말 하진 못해요. 사실 스무살의 나와 서른살의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누구나 그래요. (나이가 들면서)주변에서 어른이라고 부르는데, 전 그 때랑 다를 게 없어요. 오히려 제가 스무살 때 서른 살 넘은 선배들을 보고 ‘어른들’이라고 여겨 어렵게만 대했던 게 죄송해지는걸요. 나이 들면서 더 많은 걸 보게 되는 것 외엔 대단하게 달라진 건 없어요.”
생애 첫 무대 공연에 도전한 김규리, 그는 “내가 나와 소통하고 싶었고,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속 마음을 내비쳤다.
“춤을 춘다는 건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건 늘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난 준비가 안 됐어 다음에 할래’라고 핑계를 대요. 막상 지나고 나면, ‘그 때 도전이라도 해볼걸’ 하고 후회해요. 전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도전을 해보자. 무모한 도전이라고 보시는 분도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너무 감사해요. 제 인생의 전체를 놓고 볼 때 성장 중인 건 달라지지 않거든요. 내 분야가 아닌 곳에서 성장 중이고 배워 나가고 있어요. 막공까지 성공으로 끝날지 실패로 끝날지 모르겠어요. 결과가 어찌됐든 간에 저한테는 선택을 하고 도전을 했다는 게 성공입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한편, 김주원, 김규리, 배수빈, 노지현, 황만익, 최예원, 한선천 등이 출연하는 댄스뮤지컬 ‘컨택트’는 오는 1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