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순’은 ‘족구왕’‘한여름의 판타지아’ ‘우리들’을 잇는 여름 독립영화 흥행 기대주이다. 그 중심엔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이수경이 있다. 선과 악을 오가는 다채로운 얼굴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차세대 배우이다.
칸국제영화제 초청작 ‘차이나타운’(2014년)에서 주인공 일영(김고은)과 함께 자란 쓸모 있는 아이 ‘쏭’ 으로 등장한 이수경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표정, 거침없는 입담을 지닌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며 새로운 얼굴의 연기파 배우의 등장을 알렸다.
이어 드라마 ‘호구의 사랑’(2015년)에서는 밀당 고수 ‘강호경’역으로,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에서는 노을(최성원)의 여자친구 역할을 맡아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최근 개봉한 박인제 감독의 ‘특별시민’에서는 최민식의 딸 역할을 맡아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궁금증을 갖게 하는 배우로 점쳐졌다.
그래서 이수경이란 배우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아! 최민식의 딸’로 알아차리는 이들이 꽤 된다. 아버지와 딸로 인연을 맺었던 최민식은 최근 영화 ‘용순’의 VIP시사회장을 찾아 이수경을 적극 응원했다. 그것도 먼저 최민식이 영화에 대해 문의를 했다고 한다.
“최민식 선배님이 먼저 ‘용순’에 대해서 물어보셨어요. 티저가 너무 멋있게 나왔다고 하시면서요. 시사회는 언제 하는지 물어보셔서 알려드렸는데 직접 오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시사회를 본 최민식은 이수경에게, ‘너무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딱 한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주인공으로서 다르게 생각하고 한 게 있느냐’ 였다.
“다르게 생각 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저에겐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라고 해서 다른 작품이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다 소중한 작품이기 때문에 똑같이 생각했어요.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렇게 말했다니 그게 보였다고 말씀 해주셨어요.”
이제 4년차 신인 배우인 그에겐 감사할 인연들이 많다. 특히 많은 배우들이 꼭 한번 작업하고 싶어하는 최민식과 한번도 아닌 두 번째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개봉 일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영화 ‘침묵’(정지우 감독)에서도 그는 최민식의 딸로 나온다.
“정지우 감독님과는 한국영화아카데미로 인연을 맺고 단편 영화를 찍은 적이 있어요. 무엇보다 존경하는 최민식 선배님과 다시 작업 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겐 큰 행운이죠. 제가 세상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미 정상에 계셨던 분이잖아요.
‘특별시민’ 촬영장에서 함께 있으면서도 선배님은 너무나 먼 곳에 계신 분처럼 느껴졌어요. 인간적으로 너무 좋으신 분이세요. 감히 저도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 할 정도로요. 작품에 임하시는 태도를 옆에서 보고 있으면, 엄청난 기가 확 느껴져요. 촬영 상 선배님 소리가 안 들어가는 장면인데도, 숨을 가빠하시면서 그 장면에 온전히 몰입해계셨어요. 그걸 보는 제가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용순’은 여고생과 선생님의 사랑, 친구 사이의 우정,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성장하는 소녀의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꿈도 뚜렷하게 없고, 무엇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었던 용순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모든 걸 던져 첫사랑체육선생님(박근록)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특히 영화의 미덕은 단순히 치기 어린 첫사랑의 추억만을 담지 않았다는 점. 이수경이 사랑스럽고 빛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용순에게 첫사랑 체육선생님은 또 다른 아빠일 수 있어요. 엄마의 부재, 그리고 빈자리처럼 느껴지는 아빠에게 바라는 모습을 선생님에게 느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용순에게 선생님은 작은 존재가 아니고 큰 존재입니다. 남들이 봤을 때 사소한 것일 수 있는데 선생님의 한 마디가 용순이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거든요. 저도 학창시절에 부모님보다 선생님에게 더 의지했어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랑 아직도 연락하고 있을 정도로 선생님들이 좋았어요,”
이수경의 특기는 오래 달리기이다. 영화 속 용순 역시 숨이 턱 까지 차올라도 달리고 또 달린다. 여기서 그의 포기 하지 않는 자세를 엿 볼 수 있었다. ‘깡다구가 있냐’고 물어보니, “깡은 있는 척을 하죠. ”라며 웃는다.
“유일하게 잘 하는 게 ‘오래 달리기’에요. 선수 경력이 있었거나 그런 건 아닌데, 학창시절에 ‘어차피 해야 할 것 끝까지 뛰자’는 주의였어요. 포기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연기도 다르지 않아요. 15살에 연기학원을 처음 갔어요. 왜냐하면 제가 너무 숫기가 없으니까 그런 점을 깨려고 보내셨어요. 연기란 게 남들 앞에서 하는 건데,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전 그렇게 1시간을 가만히 서 있던 적이 많았어요. 거의 한달간 그런 시간이 반복 됐어요. 학원 수강생들 점심도 못 먹게 하고 폐를 끼치기도 했죠.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며 연기를 던졌어요. 그런데 너무 시원하던걸요. 그 때부터 연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
스무 살이 지나고 이수경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그는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까. ‘호구의 사랑’ 때 느껴지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니까. 흥미 있어 하니까라고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면, 요즘은 책임감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어쨌든 제가 선택한 길이잖아요. 잘 해내고 싶은 욕심 아닌 욕심이 있어요. 유일하게 욕심 나는 게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배우로서 장점이라고 내세울 만한 건 없지만 ‘생각이 많은 것’이라곤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요. 말하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요. 어떤 배우고 되고 싶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세요. 멋있게 생각하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아요. 흔한 말이지만 다양한 걸 해보고 싶어요. 좋은 연기, 좋은 배우에 대해 아직 잘 모르지만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