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1년 6월10일 법률 제619호 ‘중앙정보부법’에 의해 당시 김종필 중령이 특무부대 요원 약 3,000명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이래로 대한민국 정보기구도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을 권력 적폐청산의 대명사로 지목하면서 정치개입 단절, 국내·해외 정보 분리, 대공수사권의 박탈을 공약했다. 서훈 국정원장은 취임하면서 정보관의 기관출입을 전면 폐지한다고 전 세계에 비밀을 누설했다. 그는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과 개혁과제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은 정치와 완전한 분리를 포함해 그 어떤 조치도 다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고 국정원장 최고의 책무로 정보기관 개혁을 내세웠다. 과연 국가정보란 무엇일까.
학문적으로 정보란 ‘최고의 지도(BEST MAP)’를 그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MAP’의 두문철자 ‘P’도 ‘정치정보(political intelligence)’를 의미한다. 국내외 정치상황과 향후의 전개 예측, 민주주의의 저해요소, 국민의 정치적 통합도는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이에 미국은 정치정보를 최고정보로 꼽고 각국 정치지도자에 대한 인물정보를 보물로 간주한다. 여론주도층인 정치인은 적대세력으로서는 가장 매력적인 존재이고 따라서 정보의 관점에서는 매우 취약한 계층이다. 물론 정치정보는 정치사찰 정보, 정치공작 정보와는 전혀 별개다. 정보기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보의 정치화(politicized intelligence)이다. 정보의 정치화는 정보 수장이 특정정권의 정책에 너무 가깝게 서 있을 때 나타난다. 유한한 정권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봉사해야 하는 정보가 끊임없이 정권에 불리한 첩보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악역을 해야만 하는 것이 정보의 숙명이다. 역사적으로도 정보 정치화의 직접 책임은 정보 소비자인 대통령에게 있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사례처럼 대통령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정보의 정치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눈부신 통신기술과 교통혁명으로 전 세계가 한 이웃이 된 마당에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의 구별은 지리적인 영역이 아니라 대상이 기준이다. 오늘날 해외 불순세력은 서울 한복판에 차고도 넘친다. 이슬람 테러정보를 중동에 가서 수집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 인권만행의 대명사인 김정은 정권과 이념대립을 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에 방첩정보(counterintelligence)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의 대남공작을 저지하고 간첩의 격퇴를 의미하는 방첩공작은 직접적인 국가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울뿐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창설이 아니라 검찰·경찰·군·관세청, 항만·항공의 제반 방첩역량을 망라한 한국형 연방수사국(FBI)으로 가칭 중앙방첩청을 창설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할 것이다. 방첩공작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종착역이 어디인지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지적 싸움이다. 당연히 음모는 난무하고 외형상으로는 정치개입 같아도 간첩과 반국가세력을 검거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오늘날 간첩은 깊은 산속에 땅굴을 파고 은신처를 마련하지 않는다. 바로 우리 옆에서 또는 사이버공간에서 황금을 캐고 있다.
국가의 중추신경인 정보기구에 대한 개혁은 비밀리에 진행해야 한다. 개혁 내용 자체가 경쟁세력에는 매우 소중한 비밀정보이기 때문이다. 정보기관 개혁은 정치인이 아니라 최고전문가가 해야 하는 초정밀 신경수술이다. 결코 현재의 정치성향이나 과거 경험만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선진 정보기구의 개혁내용을 바탕으로 미래 통일한국에도 대비한 장기비전의 국정원을 만드는 것이 정보기관 개혁의 요체다. 그 목표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향처럼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을 가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정보기구’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한희원 동국대 법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