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공급 과잉 우려 속에 연일 추락하며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 급락 속에도 외국인은 한발 앞서 저유가 수혜 업종인 항공·운송주를 사들이고 피해 예상 업종인 정유·화학주는 대거 팔며 일찌감치 차익을 실현했다. 저유가 환경을 이용한 스마트한 투자전략으로 외국인은 유가 관련 종목만으로도 10%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지난달 25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감산을 내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 등 공급 과잉 우려가 불거지며 4주 연속 하락했다. 지난 19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7월 인도분은 전 거래일보다 1.20% 내린 44.20달러로 거래를 마치며 지난해 11월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런던ICE선물 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0.97% 떨어진 46.91달러, 현물 두바이유는 0.39% 떨어진 46.55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다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의 원유 생산마저 늘면서 OPEC 주도의 감산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은 이런 흐름을 한 달 전부터 예측하고 먼저 움직였다. 먼저 유가 하락으로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정유·화학 업종은 포트폴리오에서 대거 들어냈다. 외국인은 지난달 31일부터 전날까지 LG화학(051910)을 993억원 순매도했고 SK이노베이션(096770)(-786억원), S-OIL(-679억원), 롯데케미칼(011170)(-276억원) 등도 팔아치웠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유 화학 업종은 유가가 오르면 정제 마진이 올라 실적이 개선되지만 유가가 떨어지면 역마진이 발생해 수익이 줄어들 우려가 높은 만큼 한발 빨리 차익실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올 2·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4월 말 8,678억원에서 6월 현재 8,213억원으로 5.36% 하향 조정됐다.
롯데케미칼은 같은 기간 7,360억원에서 6,951억원으로 5.56%, S-OIL은 4,207억원에서 3,797억원으로 9.75% 실적 눈높이가 낮아졌다. 지난 2014년에도 SK이노베이션·GS칼텍스·S-OIL 등 국내 정유 3사는 국제유가 급락으로 정유 부문에서만 2조6,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외국인이 정유·화학주를 대거 팔자 주가도 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달 말 대비 19일 종가기준 롯데케미칼이 8.46% 떨어진 것을 비롯해 LG화학(-7.62%), S-OIL(-7.44%), SK이노베이션(-4.73%) 등이 모두 큰 폭으로 주가가 하락했다.
외국인은 유가 하락 조짐이 보이자 항공·운송주를 발 빠르게 담는 민첩함이 돋보였다. 지난달 말부터 전날까지 외국인은 대한항공(003490)을 426억원 순매수한 것을 비롯해 아시아나항공(020560)(180억원), 티웨이홀딩스(004870)(76억원), 제주항공(089590)(161억원), CJ대한통운(000120)(165억원)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항공사와 운송업체는 전체 비용에서 유류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유가가 하락할수록 원가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항공사의 경우엔 티켓 가격 인하로 관광객이 늘어 실적이 개선되기도 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실적이 하향조정된 정유·화학주와 달리 항공·운송주는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항공·운송주는 소폭 하락한 CJ대한통운(-0.78%)을 제외하고 7.65%~22.83%의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다.
유가 방향을 예측하고 한발 앞서 투자전략을 바꾼 외국인과 달리 개인은 유가 하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며 손실을 키우고 있다. 개인은 LG화학을 2,498억어치 사들인 데 이어 롯데케미칼(1,835억원), SK이노베이션(1,816억원), S-OIL(1,328억원) 등도 대거 사들였다. 주가가 떨어지는 종목만 주워담은 셈이다. 반면 대한항공(-574억원), 아시아나항공(-262억원), CJ대한통운(-131억원), 티웨이홀딩스(-62억원) 등 최근까지 가파르게 상승한 종목은 순매도해 대비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