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 우려된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굳건했던 한미동맹이 오히려 훼손되는 뒤탈이 날 수도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양국 대통령의 대북관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양국 정부의 대북정책도 미스매칭을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은 ‘대화파’가 주를 이루는 반면 미국의 외교안보 인선은 ‘매파’로 구성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벼르며 날을 갈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해 이렇다 할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정상 간 정치·외교적 간극이 워낙 깊어 자칫하면 불신과 갈등만 증폭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극복해야 할 위험요소다. 외교·안보 및 통상 분야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는 양측의 딜레마를 주요 현안별로 풀어본다.
◇대북관의 차이=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는 문 대통령이 최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에 주로 관심을 두는 반면 문 대통령은 남북 간 교류와 협력 회복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트럼프는 비핵화를 북한 문제 해결의 기본전제로 내세우는 반면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만 ‘잠시 중단’하면 얼마든지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남 원장은 분석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보장 여부에 대한 태도에서도 한미 간 온도차가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전향적 태도변화를 보인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고 단계적으로 관계를 개선해 평화협정 체결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시각차도 확실하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교류를 한반도와 중국·러시아에 이르는 동북아 물류 및 자원·에너지 협력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포부를 안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 등은 이를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경제교류는 미국과 동맹을 위협할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자금을 대주는 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역안보의 이해 격차=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적 힘의 균형을 바라보는 시각도 매우 다르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삼되 길게는 동북아집단안보체제 및 경제공동체를 이뤄야 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유럽연합(EU)을 롤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문 대통령은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예방을 받고 동북아 월드컵 공동개최 의지를 밝힌 자리에서도 이 같은 집단안보 구상을 밝혔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윤영석 의원은 “우리 정부가 미국·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밀고 당기기를 통해 실리를 취하려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와 일본·호주 등을 축으로 삼아 중국·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와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특히 동북아집단안보체제가 실현되려면 현재의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비롯해 한미 간 안보동맹 자체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 등은 고도의 전략이 요구되는 민감한 현안인데 한국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못 얻고 있다.
최근에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마저 북핵 동결 시 한미 군사훈련과 주한미군 전략무기를 축소하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한미 양국의 군사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한미동맹에 대한 속내가 무엇인지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동북아집단안보체제 발언이 당장 현실화하려는 게 아니라 매우 긴 안목에서 이야기한 것이므로 큰 의미를 두지 말아달라”거나 “문 특보의 발언은 청와대의 입장이 아닌 학자 개인으로서의 학구적 의견일 뿐”이라고 진화에 나서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특보가 개인적인 의견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도 미숙한 발언이었고 우리의 카드(의중)를 너무 많이 상대방에게 미리 보여줘 버린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외교적 소통 방식의 미숙함을 극복하려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관록 있는 인사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곁들여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의 자칫하면 치킨게임=양국 간 통상의 핵심 고리인 FTA를 놓고도 양국 간 이해는 엇갈린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한미 FTA 재협상은 협약의 당사국 일방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재협상을 주장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주장에 적극적으로 각을 세우지는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굳이 이 문제를 우리가 정상회담의 테이블에 먼저 꺼낼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측이 한미 FTA 재협상에서 요구할 내용의 요지는 결국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려는 것인데 굳이 장단을 먼저 맞춰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 등 우리의 수출 주력상품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고 국내 서비스 시장 개방 요구는 한층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한미 FTA 재협상 주장에 대한 실효성을 놓고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다만 보수 진영일수록 상대적으로 재협상 목소리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한 외교당국자는 “이미 한미 FTA에는 양국의 이익균형이 잘 맞춰져 있다는 것을 미국 조야에서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이를 주장할 경우 새로운 이익균형점을 도출해야 하는데 상당히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병권·나윤석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