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마이그레이션(Great Migration·대이동)’.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한 제7차 에너지전략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촉발한 신재생에너지로의 정책 변화를 두고 이같이 입을 모았다. 저탄소 경제라는 전 세계적 조류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론을 두고는 팽팽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과 이행 속도, 공간 부족, 안보 위협, 제도의 미비 등 다양한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원전 급감하는데 신재생 못 들어오면 낭패=가장 큰 쟁점은 ‘속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탈화전 정책으로 오는 2029년까지 원자력과 석탄 발전에서 사라지는 발전설비용량은 4만1,614㎿에 달한다. 6월 현재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발전설비용량(11만1,729㎿)의 37.2%에 달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신재생에너지는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처럼 적기 공급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상권 한국전력 기획본부장은 “신재생은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전력계통에 사용되기까지 수년이 걸린다”며 “원자력발전량이 줄어드는 순간 신재생이 못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석탄발전을 없애기보다 가동 시기를 조정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석탄발전의 총량을 제한하고 미세먼지 오염을 고려해 가동 시기를 조정하면 환경과 건강에 대한 고려가 가능하다”며 “나아가 석탄발전의 총량제한보다 배출시설 개선과 배출규제 강화가 석탄·화력의 미세먼지 저감에 더 중요한 기여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30%에 달하는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 늦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차문환 전 한화큐셀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 신재생에너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꼴찌다. 일본도 후쿠시마 원전 이후 빠르게 변했는데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천천히 가도 좋다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도 너무 느리기 때문에 밤새 달려도 늦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설비용량 비중이 지난 2016년 기준 8% 내외인데 태양광과 풍력은 1%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간 10조 투자해야…전기요금 인상 사회적 합의 필요=재원마련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정부 주도의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생산단가보다 전기요금이 싼 상황이라 아직 민간이 공격적으로 투자할 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남훈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리려면 지금 발전설비의 4배를 설치해야 하는 데 투자는 매년 10조원 이상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성우 삼정KPMG 본부장은 “정부가 목표를 채우려면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들어와야 하는데 리스크가 너무 커서 망설이고 있다”며 “결국 신재생은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요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선결 조건이라는 얘기다.
이상훈 소장은 “지금도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이행에 따른 전기요금 총괄원가 반영 비용이 연간 1조2,000억원에 달하는데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면 더 올라갈 수 있다”며 “이 비중이 커질수록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소비자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요금 인상 압력이 크지 않다는 반론도 있었다. 차문환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보면 (태양광의 생산단가가) 1㎾당 30원인 곳도 있다”며 “우리나라는 지금 150원이 넘는데 (신재생에너지를 빠르게 확대해서) 수년 내로 그리드 패리티에 들어가면 전기요금 가격이 오를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태양광 목표 달성에만 서울 면적의 3분의2 필요=공간 부족도 문제다. 이상훈 소장은 “2030년까지 태양광 설비만 37GW까지 늘려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부지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3분의2 이상인 450㎢에 달한다”며 “해상 풍력도 육상에 선로를 추가해야 하는 등 많은 난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필요 부지가 많은 만큼 시설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상권 본부장은 “신재생은 땅을 많이 차지하는 발전원”이라며 “대한민국에 태양광을 깔 수 있는 만큼 다 깐다고 했을 때 현재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간당간당하다”고 말했다.
주민참여형 신재생에너지 사업 모델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최주엽 광운대 교수는 “외국은 옆에 풍력발전소가 돌고 있어도 주민들이 말이 없는데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요금이 본인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라며 “지자체 60곳 이상에 이격거리 규제가 있는데 이익을 나눠줘서 농민들 땅에 지을 수만 있게 되면 목표치 달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력공급 차질에 안보 위협 우려도=급격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주도는 풍력발전의 비중이 30% 정도 되지만 바람이 불어도 걱정이 앞서는 게 바람이 세게 불면 돌다 멈춰버리기 때문”이라며 “에너지가 부족해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에너지 안보는 타협 불가능한 과제다.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전제된 상황에서 에너지 혁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 특별기금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부경진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신재생에너지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3% 정도밖에 안 쓰고 있다”며 “신재생에너지 특별기금을 조성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에너지 신산업 확산을 위해 에너지특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정책 제언도 있었다. 이상학 전자부품연구원 센터장은 “에너지 신산업이 선순환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유입돼야 하는데 아직 장벽이 많다”며 “에너지특구 등 실증연구가 본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