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동북아 균형자론의 그림자

2005년 어설픈 카드 꺼냈다 뭇매

이번엔 사드문제로 美와 관계 급랭

회담 도중 트럼프 깜짝발언 없도록

정부, 사드 논란 조속히 정리해야

오철수 수석 논설위원오철수 수석 논설위원


/오철수 수석논설위원

2005년 어설픈 카드 꺼냈다가 뭇매


이번엔 사드 문제로 美와 관계 급랭

트럼프와 회담도중 깜짝발언 없도록

정부가 조속히 사드 논란 정리해야


지난 2005년 3월8일. 노무현 대통령은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새 외교·안보 정책 기조로 ‘동북아 균형자론’을 꺼냈다. 노 대통령은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서 안정과 평화 보장의 질서를 형성하는 데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미동맹의 이탈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은 국내외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미동맹만 위태롭게 할 뿐”이라며 강력 반발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조차도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균형자 역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거들었다. 바다 건너 미국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내가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면 ‘멀리 있는 강대국과 특별한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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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6월 한미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외교적 파장이 심상치않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한미동맹 속의 역할을 모색한 것”이라며 슬그머니 물러섰다. 그래도 논란이 계속되자 우리 정부는 정상회담 직전 “동북아에서 최종 균형자는 미국”이라고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던 초기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결국 정상회담에서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단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치밀한 준비 없이 내놓은 안보정책이 한미 간의 틈만 벌려 놓은 채 흐지부지돼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12년의 시간이 흐른 2017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면서 한미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5월30일 문 대통령이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추가로 4기가 국내에 반입돼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부터다. 엿새 뒤인 6월5일 문 대통령은 사드 4기 추가반입 사실이 국방부 정책실장 지시로 누락됐다는 보고를 받고 “법령에 따른 적정한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사드는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의 취소를 촉구하고 나섰고 미국은 “사드는 한국의 방어에 필요한 것인데 논란이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발끈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커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정부는 “기존 결정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톤 조절에 나섰지만 미국 내에서는 “한국이 원치 않으면 사드를 철수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2005년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설익은 카드를 내밀었다가 아무런 실익도 얻지 못하고 뒷수습하는 데 진땀을 흘렸던 우리 정부가 또다시 사드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2년 전과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때 동북아 균형자론을 설계했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이번에도 사태를 키우는 모습을 보자니 답답한 생각마저 든다.

이제 29일 한미 정상회담까지는 딱 일주일 남았다. 정상들이 회담을 할 때 꺼리는 것이 하나 있다. 사전 의제조율 과정에서 없었던 돌출발언을 뜻하는 이른바 ‘서프라이즈’다. 국가 대사가 충분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될 경우 뒷수습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에 대해 충분한 의견조율 없이 양국 정상이 만나면 가뜩이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장에서 어떤 ‘깜짝 발언’을 내놓을지 모른다. 사드에 관한 정부의 조속한 입장 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만일 정부가 국내 지지자들을 의식해 사드로 자존심 세우는 데만 급급하다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한미동맹 균열을 가져와 우리의 안보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과연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최우선 고려하는 전략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csoh@sedaily.com

오철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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