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가계대출에 대해 “브레이크가 없다”며 원인으로 부동산을 지목했다. 전체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대출을 억제하고 금리 상승으로 늘어난 이자 부담에 직격탄을 맞을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22일 금융통화위원회 금융안정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안정보고서를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보고서에서 한은은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상황을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되면서 안정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며 “취약업종 대기업의 구조조정 관련 위험(리스크)도 어느 정도 해소된 데다 금융기관 및 외환 부분의 충격흡수 능력도 양호한 상태”로 설명했다.
하지만 한은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강한 진단을 내놨다. 한은은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취약성이 상존하고 있다”며 “지난 수 년 간 저금리 상황에 적응해 왔던 경제주체들이 향후 금융·경제 상황 변화에 어떤 행태 변화를 보일지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달 국내 경제 여건이 나아지면 “통화 정책의 완화 정도를 조정할 수 있다”며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상태다. 본격적인 금리 인상을 맞이하기 전에 가계부채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1·4분기 사상 최대인 1,360조원 규모를 기록한 우리 가계부채를 두고 “주요 선진국과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과정을 겪지 않고 지속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저금리 기조 지속’이라는 설명을 달았지만, 가계부채가 급증한 시기는 2014년 하반기로 특정했다. 2014년 하반기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부양을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를 완화한 조치가 가계부채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은은 “LTV, DTI 등 부동산 규제 완화도 주택 구입자의 차입 여력을 확대해 주택담보대출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가계부채의 특징으로는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평균 부채규모가 큰 베이비붐세대(55~63년생)가 가계부채 증가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조기 퇴직으로 50대 이상의 자영업 진출이 늘고 임대 소득을 위해 빚을 내 부동산에 투자해 다주택자가 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주택을 보유한 가구의 금융부채는 2012년 179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226조3,000억원으로 뛰었다. 한은은 “임대인의 전세가격 인상과 월세 전환 등으로 임차가구의 주택 매입 수요가 늘었고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아진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을 경우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판단도 내놨다.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금융의 노출액(익스포저)는 1,644조원, 이 가운데 가계 비중만 55%(904조원)에 달한다. 한은은 가계가 공적 보증기관을 통해 부동산 대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가계 대출이 부실해지면 공적 기관이 이 비용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신용도가 높은 차주의 비율은 올해 1·4분기 기준 54.4%를 기록해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부실 우려가 큰 위험가구의 비중도 상당했다. 한은 분석결과 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을 따진 부실위험지수가 기준점인 100을 초과하는 위험가구는 지난해 말 기준 126만3,000가구(전체 11.6%), 금융부채 규모만 186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체 금융부채의 21.1%에 달한다. 이 가운데 고위험가구는 31만5,000가구(2.9%), 62조원의 빚을 가지고 있다. 고위험가구는 가처분소득 가운데 원리금 상환부담이 40% 이상이고 자산을 모두 매각해도 빚을 다 못 갚는 가구다. 한은은 대출 금리가 0.5%, 1%, 1.5% 오르면 고위험가구는 각각 8,000가구, 2만5,000가구, 6만 가구가 늘어나며, 금융부채 규모도 4조7,000억원, 9조2,000억원, 14조6,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금리 인상기에 저소득층이 많은 고위험가구가 직격탄을 맞는다는 얘기다.
한은은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금융기관이 대출 취급 유인을 약화시키거나 위험도가 높은 대출을 중점 관리해 가계대출 급증세를 억제해야 한다”며 “취약계층의 사회·복지 차원까지 고려한 다양한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거주를 중심으로 하는 주택 소비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