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中企시대 산업구조조정 새판짜자]대기업엔 수조 퍼붓고..."中企 대책은 기한 연장 아니면 재탕"

본지·IBK경제硏 공동기획

<중> 변죽만 울리는 구조조정 대책

정부 지원책 중간재 제조사 집중

한진 유탄 맞은 해운업종은 소외

절차도 복잡...신청하다 하세월

"체감 지원책 있기나 했었는지..."

소상공인 지원조치는 없는 수준

중기 맞춤형 세심한 대책 절실

2615A16 중소기업


“운영 자금이 자꾸 구멍이 나니까 정부지원 좀 받고 싶은데, 수요가 훨씬 많은지 우리 차례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울산 소재 조선 기자재업체 A대표)

“조선만 어렵나요? 해운도 힘들기는 마찬가진데, 전체 규모가 작다고 항상 이런저런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부산 소재 해운 유통업체 B대표)


극심한 불황으로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었던 조선업계에서 요즘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대형 3사 나란히 흑자로 돌아선데다 신규 수주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

해운업 역시 운임이 지난해의 1.5배 수준으로 상승하고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공백을 상당 부분 메꾸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정부 지원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산과 울산, 경남, 전남 등지의 조선·해운 관련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한겨울을 버텨내고 있다.

IBK경제연구소가 지난 4월 조선해운 협력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에 따르면 관련 중소업체와 소상공인들은 자금 압박과 도산 위기 속에서 힘겨운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처럼 고용규모나 파급효과가 큰 대기업들이 휘청일 때는 정부가 수조 원을 퍼부으며 살리지만, 관련 1~3차 협력사와 지역 소상공인은 여느 때처럼 외롭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B대표는 “구조조정과 관련해 어떤 중소기업 대책이 있었는지 기억이나 나느냐”고 물은 뒤 “피부로 느끼는 정부의 도움은 거의 없고 대부분 기존 대책 연장이거나 재탕, 삼탕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9월 부산 시민들이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에서 한진해운 정상화와 부산경제 살리기를 요구하는 상경투쟁을 하고 있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으로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은 체감이 어렵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DB지난해 9월 부산 시민들이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에서 한진해운 정상화와 부산경제 살리기를 요구하는 상경투쟁을 하고 있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으로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은 체감이 어렵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DB


구조조정 지원, 대기업만 집중=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중소기업 구조조정 지원대책은 △긴급 경영안정 지원 △사업전환·다각화 △고용유지·비용절감 등 기타 경영지원이다. 일시적인 자금 경색을 겪는 중소기업에 상환을 유예하거나 만기를 연장하고 특례 보증을 제공하는 게 주다. 사업 재편에 나선 기업을 지원하고 다른 먹거리를 발굴하는 연구개발(R&D) 자금도 책정됐고, 소상공인 재창업 교육 등이 진행됐다. 조선업은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돼 고용 유지 지원금이 투입됐고 조선밀집지역에 대한 관광산업 육성과 중·소조선사 표준선형 개발 등 대책도 제시됐다.


그러나 면면을 뜯어보면 대상 선정부터 정책의 실효성, 현실성 부분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내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며 “정부가 대기업에만 집중하면서 중소기업 대책을 면밀하게 짜지 못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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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종 지원책 크게 부족” 호소=중소 조선업계는 중소기업 지원책이 대부분 조선사 납품 비중이 높은 중간재 제조기업에만 집중돼 다른 업체들은 소외됐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함께 어려움을 겪었던 해운 관련 지원책이 부족했다는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한진해운에 선박 용품이나 기관 부속품을 공급하는 시장 규모는 연간 200억원으로, 이 가운데 90%가 부산 소재 기업 몫일 만큼 한진해운 파산에 따른 항만서비스업체의 피해가 컸다. 그러나 한진해운 협력사에 대한 특례보증 등 금융지원 외에는 별다른 지원책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일부 기업에는 그나마 부족한 정부 지원마저 ‘그림의 떡’이었다. 부산에서 항만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씨는 “지원은 질적·양적으로 아쉬웠고 특히 영세업체는 담보력이 부족해 금융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복잡한 지원절차 간소화해야=복잡한 지원절차도 장애물로 다가왔다. 거제 지역의 한 조선 기자재업체 대표는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값비싼 컨설팅업체 도움 없이 정부지원 신청을 하기 어렵다”며 “지원대상은 엄격히 가려야겠지만, 증빙 절차나 서류 작업을 최소화하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지원책을 만들어놓고 알아서 찾아가라고 하기보다는 행정서비스를 보다 세심히 준비해 수요자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 마련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어떤 중소기업이 무슨 지원을 통해 어떻게 육성되는지 정책이 불명확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 때문에 실제 수요자들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 예를 들어 ‘사업전환 및 다각화 지원’ 정책의 경우 해당 기업이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일반 기업들은 활용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기자재 업체 관계자는 “평범한 기업은 갑자기 사업을 바꾸거나 다각화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기술력이 있더라도 해당 분야에 새로운 거래처를 뚫거나 관련 신규 인력을 뽑는 부담 때문에 선뜻 나서기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 지원 조치도 미흡=조선·해운 관련 종사자들의 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주변 상인에 대한 조치는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는 지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경영안정자금은 5,000만원 이내에서 특례보증을 제공하지만 기존 정책의 연장선에 그쳤고 ,재창업 지원과 컨설팅도 제공됐지만 급격한 상권 붕괴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평가됐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협력 중소기업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소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보다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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