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FORTUNE FOCUS|우리가 빠지기 쉬운 이야기 함정

THE STORIES WE FALL FOR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사람들은 무작위적인 사건에 순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짓기 오류(narrative fallacy)’ 현상은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필자가 아는 한 투자자는 주식 시장을 의인화한다. 그는 다우 지수를 마치 살아 있는 맹수처럼 여긴다.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을 유혹하다가 갑자기 치명타를 날리는 것 같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는 ‘주식시장’을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수완 좋은 스리카드 몬테 three-card monte 꾼 (*역주: 퀸을 포함한 카드 3장을 보여주고, 교묘한 솜씨로 뒤섞은 후 그 퀸을 맞히게 하는 도박) 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가장 대중적인 투자 방식인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일종의 점성술이나 다름없는 차트 해석을 통해 시장을 ‘읽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업에 대한 실질적 정보는 전무하다. 그들은 그저 지그재그로 점철된 차트에 스토리를 부여할 뿐이다. 시장이 ‘고갈되었다’거나 ‘바닥을 치고 있다’는 식이다.

많은 투자자들은 이처럼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에 집착을 하고 있다. 행동 경제학자들은 인간 심리와 재무적 의사결정 간 관계를 연구하며 그 이유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나심 니컬러스 탈레브 Nassim Nicholas Taleb가 명명한 ‘이야기 짓기 오류’도 반영되어 있다. 인간은 무작위적인 사건에 순서를 부여하고,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을 사후에 ‘예상 가능했던’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이야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이야기 짓기 오류’는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실수들을 설명해준다. 현대 정치의 음모이론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사람들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불특정 무장강도의 단독 범행에 의해 살해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여러 가지 음모이론을 만들었다. ‘질서가 아닌 혼란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존재론적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2007년 출간된 탈레브의 ‘블랙 스완 The Black Swan’은 주식 거래자들을 위한 일종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아무리 좋은 계획도 경제 붕괴 같은 예상치 못한 극단적 사건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개개인들도 무작위적인 사건들 앞에서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재해 발생 때 하필 그 장소에 있었던 이들이나, 한때는 탄탄했지만 지금은 신기술 때문에 설 자리를 잃은 저널리즘 분야 종사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무작위성은 일반 기업에게 좀 더 미묘한 의미를 던져준다. 어떤 기업이나 사람들은 무작위적인 사건으로 인해 극단적인 영향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생명보험과 연금은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는 비즈니스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갑자기 크게 변하진 않기 때문에 무작위성의 정도가 다소 제한적이다. 그러나 허리케인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플로리다 남부의 부동산 및 생명보험 업체는 클레임이 크게 변동될 가능성에 항상 대비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이 많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역사적으로도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뉴스 속 사건이나 역사의 전개과정도 사람들의 생각들과 달리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많았다. 예컨대 그 어느 누구도 2001년 9.11 테러를 구체적으로 예측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 경제학자들은 부의 왜곡된 분배, 부익부 현상의 심화, 미국 중산층의 침체를 예측하지 못했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요 변수들(예컨대 새로운 소프트웨어 산업의 잠재성)이 고려대상에서 누락될 수도 있다.그러나 ‘이야기 짓기 오류’를 피할 수는 있다.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과거 경제 사이클의 패턴을 미래에 과다 투영하지 않으면 된다. 분산된 정보를 분석해 사업상의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 데이터에서 일관된 스토리를 읽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현실은 결코 질서정연하지 않다. 특정 투자가 성공한다고 말하려면, 경기 불황과 신규 경쟁사, 전쟁 같은 다양한 변수가 있는 미래에도 그 투자가 유효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특히 주식에 관한 이야기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해야 한다.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모든 데이터들이 기정사실로 보이기 때문이다. 증권 분석은 형이상학적 진실 추구 활동이 아니라,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일 뿐이다. 그러나 판단은 틀릴 수 있다.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해 판단은 잘못될 수도 있다.

좀 더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갑자기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누군가를 비난하게 된다. 그리고 이유를 찾게 되는 법이다.


여기서 두 가지 좋은 예를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블랙스완’에서 나온 사례다. 저자 탈레브는 ’왕이 죽었고, 왕비가 죽었다‘라는 문장을 제시한다. 특별히 인상적인 문장은 아니다. 이 문장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면 ’왕이 죽었고, 왕비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인과 관계도 충족된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죽은 왕비라니, 더 이상 원인을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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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마이클 루이스 Michael Lewis의 신간 ‘완화 계획(The Undoing Project)’에 나온 사례다. 루이스는 행동 경제학의 선구자인 이스라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 Amos Tversky의 실험을 설명한다. 두 심리학자는 가상의 특정 인물 린다를 설정해 잘 모르는 피험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실험 속에서 린다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31세 독신인 린다는 솔직하고 밝은 성격을 갖고 있고,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 후 이들은 피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a)린다는 은행원이다’와 ‘(b)린다는 은행원이고,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이다’ 가운데 사실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정답은 (a)다. 페미니스트 은행원 린다는 전체 은행원 린다의 하위 집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험자의 85%는 (b)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 린다를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다는 특성과 더 쉽게 결부시켰다. 여기에 나오는 린다는 피험자들의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이야기 짓기 오류’에 해당 된다고 할 수 있다.

루이스에 따르면,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여기서 ‘대상을 보는 맥락이 달라짐에 따라 대상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탈레브가 내린 결론도 심리학자들의 예상과 동일하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 짓기 오류와 편집증, 음모이론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정치적 ‘편집증’ 이라는 관념은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 Richard Hofstadter가 처음 도입했다. 그는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1년 후, 하퍼스 매거진 Harper’s Magazine에 ‘미국정치의 편집증적 스타일(The Paranoid Style in American Politics)’이란 에세이를 기고했다(이 에세이는 미국 음모 이론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그는 “정치적 편집증이 있는 사람은 항상 시민들을 전면에 내세워, 기이하면서도 악의적인 힘을 지닌 ‘강력한 악당’과 생사가 걸린 싸움을 한다(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는다). 결국 그는 위기를 만들고, 은행 지급 청구 쇄도(뱅크런)의 시발점이 되며, 결국은 경기 침체와 재앙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보스턴 글로브 Boston Globe는 최근 오하이오 주 벨뷰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한 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는 소규모 자영업체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을 개탄하며 “그건 모두 정부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독자 여러분은 그가 지목한 범인이 얼마나 일관적인지를 알아차렸는가. 그는 아주 복잡한 이슈를 매우 단순하게 풀고 있다.

호프스태터가 자신의 글에서 말하는 ‘일관성’이 바로 이 ‘이야기 짓기 오류’다. 이는 정치적 불안감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행동 경제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이야기 짓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이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들의 통찰력은 경제학을 넘어 정치,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야기 짓기를 통해 우리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인간의 욕구도 채울 수 있다. 어쨌든 왕비는 슬픔에 겨워 죽었다고 한다.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 그럴듯한 이야기와 잘못된 응답
마이클 루이스의 저서 ‘완화 계획(The Undoing Project)’에서 소개된 심리 실험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려는 욕망이 사람들의 올바른 판단력을 가로막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시나리오 : 31세 독신인 린다는 솔직하고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다음 중 사실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A) 린다는 은행원이다. (B) 린다는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은행원이다.

정답 : (A) 페미니즘 문제에 대한 린다의 생각은 알 수 없다. 또한 페미니스트 은행원의 수보다 일반 은행원의 수가 당연히 더 많다.

실제 최다 응답 : 응답자의 85%는 (B)를 선택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을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는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에 꽂힌 것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ROGER LOWENSTEIN

ROGER LOW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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