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 업계에 불어온 초대형 투자은행(IB)의 바람은 NH투자증권(005940)에서 시작됐다. 2014년 NH농협금융지주가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부터 증권사 대형화의 바람이 불었고 지난해 현대증권이 KB금융(105560)지주의 품에 안기며 대형 증권사 인수합병(M&A)이 일단락됐다. 수년간 증권사 M&A와 유상증자를 거쳐 외형상 몸집 만들기를 마무리한 NH투자증권과 KB증권이 최근 DNA 체질까지 바꾸고 있다. 초대형 IB의 진검승부는 증권·은행·보험 간 협업과 내부 직원들의 DNA 변화 여부에 달렸다는 것이 금융지주계열 증권사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이중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출금 위험도를 측정한 위험가중자산(RWA)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금융지주 계열사의 약점으로 부각됐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NH투자증권과 KB증권은 말한다. 오히려 증권과 은행·보험을 아우르는 삼각편대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승기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증권업의 위상을 말해주듯 지주 내부의 역할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자신감도 확인됐다. 각사 상황에 따른 전략도 준비됐다. NH투자증권은 경쟁사 대비 가장 우수한 각 부문의 서비스 역량을 모아 토종 종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유기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KB증권은 기업의 생애주기인 창업과 성장, 성숙, 안정으로 이어지는 모든 단계에서 필요한 종합금융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NH투자증권
전략투자운용부 정식부서로 출범
기업신용공여·외국환 사전 준비
RWA 규제 내부등급법으로 돌파
KB증권
기업금융복합점포 CIB 8개로 확대
중견·중기 전담 자금조달자 역할
국민銀 영업망 활용 기선제압 나서
◇NCR 외 은행 RWA까지 적용…규제 완화 필요=현재 NH투자증권과 KB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각각 4조5,966억원과 4조 1,830억원으로 자기자본 4조원 이상에 부여되는 단기어음 발행의 자격을 갖춘 상태다. 은행과 증권 간 협업을 통해 만기 1년 이내의 어음 발행과 할인·매매·중개·인수·보증 업무 등 단기금융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은 고객 확보 차원에서 분명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금융지주 계열사로 RWA 적용을 받는 것은 모험자본 투자를 늘려야 하는 초대형 IB 진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독립증권사가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을 받는 데 그치는 것과 달리 NH투자증권과 KB증권은 은행에 대한 RWA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자본 한도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계를 지닌 채 출발하는 점이 부담이 될 수 있지만 NH투자증권과 KB증권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각사마다 RWA 여유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됐다. 더구나 기업신용공여(대출)한도 확대를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여전히 요원한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자기자본의 200%까지 끌어올려 단기어음을 발행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단기어음이 초대형 IB에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와도 온도 차가 있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는 “당장 큰 변화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단기어음은 수많은 IB 업무 중 한가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성현 KB증권 IB부문 부사장도 “실상과 달리 단기어음 발행에 지나친 의미가 부여돼 있다”며 “기존 IB 업무의 내실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단기어음…발행보다 운용 성적이 중요=두 회사 모두 기존의 전통적인 IB 역할을 위해 증권과 은행·보험 간의 협조가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단기어음 역시 발행보다 운용을 통해 수익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NH투자증권은 전략투자운용부를 출범시켰다. 당국 인가 전에 정식 부서로 출범시켜 기업신용공여와 외국환 업무의 핵심 역할을 사전에 준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RWA 규제 한도 역시 자체적인 신용리스크에 대해 내부등급법 시스템을 도입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내부등급법 시스템은 금융감독 당국에서 정한 위험가중치를 적용해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하는 표준방법이 아닌 자체적으로 추정한 부도율, 부도 시 손실률, 익스포저 등 리스크 측정 요소를 활용해 신용리스크에 대한 위험가중자산을 선제적으로 산출하게 된다. 쉽게 말해 NH 자체적으로 위험 요소를 측정해 당국의 위험가중자산 한도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2020년 금융감독당국의 승인까지 받겠다는 목표다.
KB증권은 28일 CIB복합점포를 세 곳 더 늘려 모두 8개로 확대했다. 은행과 증권의 기업금융 복합점포인 CIB의 확대는 KB증권 초대형 IB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특히 초대형 IB 사업자 중 유일하게 중견·중소기업 전담 커버리지 조직인 SME금융본부를 신설하고 신기술 사업금융 라이선스를 취득해 중견·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역할을 키워가고 있다. 대기업 커버리지에 강한 국민은행과 CIB를 통해 기업발굴과 자금중개 등 IB 포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KB증권은 지난 3월 말 기준 은행의 증권 소개영업 자산이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한 해 실적인 9,246억원을 석 달 만에 뛰어넘은 수치다. 국내 최고 수준의 국민은행 네트워크를 활용해 초대형 IB 초반 기선 제압이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증권업의 위상과 내부 구성원의 DNA 변화가 증권·은행·보험으로 연계되는 금융지주계열의 장점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 받는다. 정 대표는 “우리투자증권부터 시작된 국내 최강의 IB 맨 파워를 지주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증권업이 은행 내부에서 소외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도 “현대증권 인수 이후 증권 부문의 확대와 위상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며 “초대형 IB가 증권뿐만 아니라 계열사 간 협업의 창구가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