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스타일이 아닙니다. 스타일은 과거를 모방하지만 디자인은 현재에서 영감을 얻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57)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를 둘러싼 제품을 더 잘 디자인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라시드는 오는 10월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아시아 첫 대규모 전시인 ‘당신 자신을 디자인하라’를 위해 방한했다. 이번 전시에는 디자인 대회 수상작을 포함한 작품 350여점을 선보인다.
이집트 출신이며 미국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 디자이너가 만든 물건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1,000원 남짓한 파리바게뜨의 앙증맞은 생수병부터 현대카드의 VVIP회원 카드, 반짝이는 초자글래스의 LG 디오스냉장고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세계 400여곳의 기업과 왕성한 작업을 해온 작가는 20년 전 외친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문장을 다시 언급하면서 디자인을 멋스러움이나 스타일리시함 정도로 보는 세간의 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20년 전 그렇게 말한 것은 디자인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매개체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은 디자인을 단순히 스타일로 인식했고 우리의 경험을 향상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여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디지털 시대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를 스스로 자주 묻고는 한다”면서 “디지털 시대는 독창적인 시도와 이전 시대에는 불가능했던 시도를 할 기회를 준다”고 강조했다. 일종의 디지털 회화라고 할 수 있는 ‘디지팝’ 작품도 전시에서 소개된다.
“산업혁명 후 세상은 너무 단색으로 변했다”고 한탄한 작가는 모든 색을 사랑하지만 특히 분홍을 좋아하는 이유를 “매우 아름다운 색깔이며 30년간 분노 조절 치유의 목적으로도 사용된 색깔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의 디자인 원본 스케치도 공개될 예정이다. 디자인이 아닌 이론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고당한 뒤 갈 곳을 몰랐던 32세의 젊은이가 어떻게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로 성장했는지 파란만장한 이야기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