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푸릇푸릇한 나무가 울창한 탄생의 계절이죠. 무언가를 잃은, 상실의 고통에 놓인 인간이 탄생의 계절을 마주할 때의 당혹감 그런 것들을 적어 내려갔어요.”
소설가 김애란(37·사진)이 5년 만에 7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을 들고 왔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상실을 겪은 사람과 타인의 불행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온도차다.
소설집 제목은 수록작 중 한 편의 제목이 아니라 ‘풍경의 쓸모’ 편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球)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는 부분이다.
“어느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인데 7개 단편을 관통할만한 제목이 마땅치 않았어요. 사실 제목을 붙이기까지 오래 고민했는데 꼭 맞는 제목이 나와준 것 같아요.”
마지막 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계곡에 빠진 학생을 구하려다 숨진 남편을 원망하던 명자의 모습에서 여는 소설 ‘입동’에서 어린이집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아이의 부모가 타인의 차가운 시선에 매일 ‘꽃매’를 맞는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읽었다. 그러나 작가는 ‘세월호’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목울대에 머문듯 입밖으로 그 단어를 꺼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는 지난 2014년 세월호와 관련된 산문에서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그해 여름 계간지 문학동네에 실린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애란은 이렇게 썼다.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그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어쩌면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드려다 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거였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 아닐까 싶었다.”
단편집 ‘비행운’부터 김애란의 시선은 바깥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웃음기를 걷어냈다는 것이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옆으로 향하는 과정은 성숙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탓이다. “학생 때 데뷔를 해서 그런지 세계에 대해 질문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태어났는지부터 궁금했어요. 그래서 1인칭 소설도 많고 사회와 접점도 적고 자전적인 이야기나 실제로 나에서 출발하는 소설들이 많았죠. 내 몸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로 변주하면서 쓰다가 이제는 다른 자리에서 다른 인물들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온 거 같아요. 남의 이야기는 농담하기 쉽지 않죠. 과거에는 너비보다는 밀도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디 하나에 박혀 있는 점이 아니라 좌표 위에 놓인 점처럼 여러 세대 안의 누구, 이런 식으로 다면체로 보여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인물들의 동선도 원룸 안에만 있다가 용기 내서 겨우 나가보는게 편의점이었다면 서울을 조금 거닐다가 이번에는 영국 에든버러까지 가는 거죠.”
타인의 이야기를 하려면 더 잘 알아야 한다. 모르고 쓰면 들통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쓰는 방법이 신문 읽기다. “하루 일과를 신문을 보는 데서 시작해요. 기사를 통해 어떤 일이 어떻게 시작돼서 어떻게 끝났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작가들에겐 유익하죠. 제가 흥미를 갖는 기사는 사건의 드라마틱한 부분이 아니라 그 안에 배어 있는 삶의 디테일이에요. 사회보장제도 기사든 사회면이든 경제면이든 삶의 구체성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들, 굉장히 건조한 기사인데 실제 우리 삶을 말해주는 세목들이 있잖아요. 그런 기사들을 꼼꼼히 읽는 편이죠.”
5년만에 힘겹게 써내려간 책을 조심스레 내놨는데 작가는 그간 써온 단편 속 인물들에 대한 책임과 미안함 속에 서성이고 있다. “단편들은 이야기가 완결된 상태에서 끝나지 않고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상태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아요. 보통 사람들이 미결된 기억이 오래간다고 하지 않나요. 어떨 땐 내가 그 인물들을 거기 두고 온 느낌이 듭니다. 이야기 구조 자체도 완결되지 않아서 미결된 상태로 나에게도 남다 보니 그래서 궁금하고, 때때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죠.”
김애란은 책의 막바지 ‘작가의 말’에서도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고 썼다.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