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로터리]품위에 대하여

조은정 한남대 교수

미술사학자 조은정


일상의 공간에 위치한 조각의 실재감은 사건이나 관념마저 역사적인 사실로 믿게 만든다. 인간의 고귀한 희생과 관용을 가시화한 동상 가운데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을 따를 것은 없어 보인다. 1884년 제작되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한 ‘칼레의 시민들’은 동상의 높이를 둘러싼 주문자와 작가 사이의 의견 불일치라는 스캔들에 휩싸였지만, 로댕이라는 위대한 조각가의 예술혼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인간의 고귀한 정신을 가시화한 기념비가 됐다.


사건은 백년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 칼레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3세와 대적하여 1년 동안이나 성문을 닫고 항전하였지만 결국 식량부족으로 항복하게 되었다. 시민 전부가 처단될 상황에서 시민대표 6인이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중재안이 받아들여졌다. 시민대표를 뽑는 장소에서 부유하며 존경받는 시민 외스타유 드 생 피에르가 나서자마자 동시에 여섯 명이 앞으로 나왔다. 6인이면 족한데 지원자가 7인이 된 것이다. 최종 6인에 대한 결정이 미루어진 채 아침이 왔고 6인의 대표가 광장에 모인 후, 최초의 자원자였던 피에르의 집안의 하인들이 들것을 들고 나타났다. 누군가 한 명은 생존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나머지 6인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6인은 남루한 망태를 뒤집어쓰고 목에 밧줄을 건 채 시의 열쇠를 쥐고 거리를 행진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왕비의 애원에 의해 이들의 목숨은 건져졌고 칼레시민 모두 무사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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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제 오블리주의 대명사인 ‘칼레의 시민들’은 로댕의 손에 의해 현존성을 얻었다. 그들은 비록 고뇌에 가득한 모습이지만 고귀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 정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늘 진실이 그러하듯 이 역사적 장면은 ‘그랬다더라’는 20개 버전 중 하나에서 시작한 ‘이야기’였다. 연대기 작가 장 프루아사르가 역사적 사실에 덧붙인 무궁한 상상력의 결과인 듯하다. 하지만 보불전쟁에서 패하여 자긍심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칼레의 시민들’ 이야기에 열광하지 않을 프랑스인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는 애국심을 강조하고 자긍심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시마다 자신의 도시를 대표하는 시민의 동상을 제작하여 세울 것을 명하였다. 칼레시는 그들의 ‘용감한 시민들’을 제작하기로 결정했고 로댕은 이야기 속의 그들을 세워 일으켰다.

5,600마일이나 떨어진 곳의 ‘칼레의 시민들’이 시민 지도자의 품위에 대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실재의 그들이 죽음을 피했다고 해서 공공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겠노라고 선택하였던 정신이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혁명에 의해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심화되던 당시를 산 로댕이 실현하고자 한 것이 인간 본연의 고귀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음은 의심할 바 없다.

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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