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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톡] 음원 성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수 이효리의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성공이라고 또 누군가는 실패라고 결론 내릴지도 모르겠다. 발표만 했다하면 차트 1위를 기록하던 최고였던 때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번 앨범 성적은 아쉬움 가득할 테고, 어떠한 음악적 소통이나 활동 없이 4년 만에 발표한 앨범 치고는 나름대로 선방한 셈으로 볼 수 있다.

/사진=서경스타DB/사진=서경스타DB


이효리는 지난 4일 오후 6시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정규 6집 앨범 ‘블랙(Black)’을 발표했다. 2013년 ‘모노크롬’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이번 앨범은 이효리가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생활하며 받은 영감을 담아냈다. 분명 이전 앨범보다 훨씬 깊어진 음악적 스펙트럼과 진정성이 담긴 앨범이었다.


음원이 공개됨과 동시에 대부분의 음원사이트의 20위권에 랭크됐던 이효리의 이번 앨범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트 간의 편차가 더욱 두드러지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마치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뉘는 앨범 반응처럼 일부 사이트에서는 15위권에 오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사이트에서는 아슬아슬하게 100위권에 간신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는 자신의 음악이 마니아적인 음악과 대중적인 음악의 접점에 서 있는 상태라고 설명하며 ‘과도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이효리의 이야기와 딱 들어맞는 반응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블랙(Black)’은 가장 베이직한 컬러인 블랙으로 돌아가 빛나는 검은 색의 새처럼 자유로워진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의 곡으로, 이효리는 이 곡에 화려한 컬러의 메이크업과 카메라 렌즈 뒤로 가려졌던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유 고 걸’이나 ‘텐미닛’ 혹은 ‘치티치티 뱅뱅’이 익숙했던 팬들에게 분명 이번 앨범은 생소하고 낯설기까지 하다. ‘블랙’이라는 앨범명처럼 그동안 이효리를 둘러싸던 화려하고 형식적이던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본연 그대로의 민낯을 마주한 기분이다.

물론, 앨범만큼이나 이효리 역시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진정한 ‘내려놓음’을 배웠다고 해야할까. 대체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삶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관을 이야기 할 때는 마치 수양을 마치고 막 하산한 도인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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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2시에 개최됐던 앨범 발매기념 기자간담회 당시 이효리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걸 나이 드니까 느끼게 된다”며 “마치 영원한 게 있는 것처럼 저도 살았다. 지금 내 괴로움도,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데, 인기도 없어지는데 말이다”라고 밝히며 최고의 자리에서 반짝 거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과거 이효리를 다독였다.


그의 이러한 마음은 수록곡인 ‘예쁘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효리는 자신이 채 보듬어 주지 못했던 자신의 20대에게 ‘예쁘다’고 말해주며, 외로웠던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이효리는 “내가 20대 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까 ‘예쁘다’였다”며 “난 왜 이렇게 다리가 짧지, 난 왜 이렇게 피부가 까맣지, 나 자신을 타박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줘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저 자신에게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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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과 동떨어져보니 이효리라는 사람의 본연의 모습에 집중한 탓도 있겠지만, 4년이라는 시간동안 확연하게 달라진 가요계 흐름과 함께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여자 가수의 나이 듦과 사그라짐도 이번 앨범을 완성하는 데 주요한 골자가 되기도 했다.

정규 앨범 발매가 빈번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디지털 싱글, 미니 앨범 등으로 간소화되고 빨라진 가요계의 변화와 더불어 곧 마흔을 앞둔 여자가수로서의 삶에 대해 그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효리는 겉모습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현실은 받아들이되, 이 부분에서 오는 결핍은 자신의 이야기로 써내려 간 음악의 진정성으로 채우려 했다.

깜찍하고 청순한 모습으로 승부하던 핑클 시절부터 현재까지 늘 정점에서 ‘최고’라는 이름으로 서 있을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미 이효리의 현재 행보는 성공과는 또 다른 새로운 지점에 가닿아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남긴다.

수많은 여자 가수 후배들이 롤모델로 이효리를 꼽는 데에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주어진 콘텐츠를 ‘이효리화’ 시켰던 아티스트로서의 내공도 있지만, 여자 걸그룹 1세대이기도 한 이효리의 행보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된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소 아직은 많은 이들이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할뿐더러, 현재까지 활동하는 1세대 걸그룹 가수들이 대부분 음반 활동은 하지 않는 요즘 가요계에서 서른아홉 살의 이효리의 행보는 그것만으로도 위안이자 동기부여가 되곤 한다.

그리고 이효리는 단편적인 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앨범을 통해 증명했다. ‘빛나는 어둠’을 이야기하는 이번 앨범이 왠지 모르게 꼭 닮아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내딛는 걸음이 또 다른 기록이 될 이효리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이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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