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김 한국GM 사장이 돌연 사임하면서 한국GM의 국내 철수설이 또 힘을 얻고 있다. 김 사장의 사임이 GM이 글로벌에서 진행 중인 사업구조조정(Restructuring) 과정의 하나라는 지적이다. 완성차 연 90만대 생산력을 지닌 한국GM이 철수할 경우 국내 제조업 기반 붕괴는 물론 3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인도, 아프리카 다음은 한국?=GM은 글로벌 시장을 북미·남미·유럽·중국·인터내셔널(GMI)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한국GM은 인도·아프리카·호주·중동·동남아 주요국과 함께 GMI 소속이다. 그런데 GMI는 지난 5월 조직 해체를 공식화했다. GMI가 위치한 싱가포르의 유력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GMI에 고용된 180명 중 150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를 옮겼고 남은 30명도 연말까지 정리될 예정이다. GMI라는 중간 관리 조직이 사라지면서 소속 국가들은 본사의 지휘를 바로 받게 됐다. 한국GM 역시 GM 본사 산하로 배속된다.
GMI 해체는 GMI에 소속된 국가에서 진행 중인 사업재구조화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인도와 아프리카가 대표적이다. GM은 인도에서 연말까지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한다. 대신 값싼 인건비를 활용해 인도를 멕시코와 중남미에 차량을 수출하는 ‘수출 허브’로 육성한다. GM은 인도의 유휴 생산시설 할룰 공장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할 계획이다.
아프리카도 사정은 비슷하다. 연말까지 쉐보레 판매는 물론 생산도 손 뗀다. 소형 상용차 공장은 상업용 트럭업체인 일본 이스즈에 판다. 이스즈와 함께 설립한 조인트벤처 지분 30%도 매각한다. 호주 역시 생산을 철수했고 중동 지역은 별도 조직으로 분리된다. 결국 GMI에서 한국GM만 글로벌 GM의 사업구조조정이 구체화되지 않은 셈이다. GM은 GMI 해체와 사업재조정 덕에 1,100억~5,000억원의 이익이 예상된다.
한국GM은 GM 본사에서 핵심사업역량은 물론 수익잠재력이 낮은 곳으로 분류된다. 한국GM의 최근 사보를 보면 GM 본사는 한국GM이 포함된 GMI를 쉐보레 유럽이나 쉐보레 러시아처럼 핵심사업역량과 수익잠재력이 낮아 투자를 줄이는 곳으로 평가했다. GM은 유럽과 러시아에서 모두 철수했다. GM이 푸조시트로엥에 매각한 오펠과 복스홀도 GMI와 같은 평가를 받았다. 매년 반복되는 임금협상에 4년간 50%의 임금 인상, 판매 부진, 막대한 적자 등이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김 사장의 사임은 GM 본사의 한국GM에 대한 본격적인 정리 작업의 신호탄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지난해 5,000억원 이상 적자를 본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며 임금 협상에서 다양한 요구를 쏟아내자 사실상 GM 본사가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GM 철수, 일자리 30만개 사라질 판=김 사장의 사임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산업은행이 보유 중인 한국GM의 지분 17.02%를 오는 10월이면 매각할 수 있어서다. 산은은 2002년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지분을 확보해 한국GM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GM이 한국 시장 철수라는 중대 결정을 위해서는 산은의 지분 확보가 선행조건이다. 앞서 2012년 10월 팀 리 당시 GM 해외사업 총괄사장이 강만수 당시 산은 회장을 만나 지분 인수 의사를 전달했고 2013년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GM이 산은 지분 인수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이유다. 산은 역시 2015년 11월 지분을 15% 이상 보유한 비금융회사 5곳의 지분을 3년 내 매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분 인수에 드는 비용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한국GM의 부평·군산·창원·보령 공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공시지가가 1조7,162억원이다. 최초 매입가인 장부가액(1조847억원) 대비 58% 올랐다. 시가로 계산하면 이익 규모는 더 크다.
GM이 철수하게 되면 국내 자동차 산업은 물론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한국GM은 국내 4개 공장에 연 90만대(부평 연 44만대, 군산 연 25만대, 창원 21만대)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 근로자 수는 30만명 정도로 파악된다. 한국GM 노조는 철수설이 반복되자 ‘일자리 지키기 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GM 본사가 국내에 신차 물량을 배정하지 않고 대부분의 신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 역시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이라며 “큰 틀에서 보면 이미 철수는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GM은 “철수나 산은 지분 등과 관련된 내용은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