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을 돈 2017시즌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이정환(26·PXG) 만큼 극적인 반전을 이룬 선수도 없을 듯싶다. 8개 대회에 나가 한 번씩의 우승과 준우승을 포함해 4차례 톱10에 들었고 공동 21위가 가장 나쁜 성적이었다. 시즌 개막과 함께 ‘30라운드 연속 무 오버파’를 이어가며 KPGA 투어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기도 하다. 2010년 정규 투어 데뷔 이후 7년 동안 무명 설움을 겪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경기력이다. 첫해 출전권(시드)을 잃어 이듬해 2부 투어로 내려갔고 2014년부터 2년간은 중국 투어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다.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어렵사리 KPGA 정규 투어에 복귀한 지난해 이정환은 상반기 6개 대회 모두 컷오프 되는 참담한 성적에 그쳤다. 연말 퀄리파잉(Q)스쿨을 통과해 다시 올해 시드권을 확보했지만 공익근무를 결심한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고 병역을 마친 뒤 투어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신청자가 밀려 공익근무가 연기됐다.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이정환은 “처음엔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했지만 ‘하늘이 한 번 더 기회를 줬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을 바꾸니 뭔가 잘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공익근무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면 올해와 같은 반전은 어쩌면 영원히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미프로인 아버지의 권유로 7살 때 골프채를 잡은 이정환은 촉망받는 기대주였다. 키 188cm로 현재 KPGA 투어 시드권자 중 최장신인 그는 타고난 체격조건과 부드러운 스윙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 시절이던 2007년과 2008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됐다. 고2 때 국가대표 합숙기간 축구를 하다 왼쪽 무릎 연골을 다쳐 수술대에 오르면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도전조차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공익근무 판정도 무릎 때문이었다.
1991년생 또래 중에는 유독 쟁쟁한 선수가 많다. 미·일 투어에서 활동하는 노승열과 송영한, 이경훈, KPGA 투어 통산 3승의 김우현, 그리고 김준성, 김기환 등이 동기생들이다. 이정환은 프로 데뷔 후 잘 나가는 동기들을 보며 “너무 부러웠고 샷이 나쁜 것도 아닌데 왜 난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반드시 때가 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계속 연습에 매달렸다”는 그는 ‘하늘이 한 번 더 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달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결승에서 김승혁에 졌지만 준우승이라는 데뷔 후 최고 성적을 낸 그는 바로 다음주 열린 카이도 골든V1오픈에선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올해는 데뷔 후 거의 처음으로 조바심과 부담감 없이 투어에 나서고 있다는 그는 “공익근무 계획으로 한 번 마음을 내려놓은 게 ‘신의 한 수’가 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대상 포인트 1위, 평균타수 3위라는 성적이 심리 변화 덕분만은 아닐 것 같다고 물었다. 퍼팅과 아이언 샷이 좋아졌다는 답이 돌아왔다. “퍼트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퍼트를 하기 전 과정인) 루틴을 단순하고 짧게 바꾸면서 잡념이 사라지고 성공률도 높아졌다”고 했다. 그린적중률 1위의 ‘아이언 맨’이 된 그는 “올해 계약한 PXG 클럽과 궁합이 맞는다”며 “헤드 디자인이 너무 예리하지 않아 보여 편안한 느낌이 들고 빌리 호셸, 제임스 한 등이 우승하는 걸 보면서 더 자신 있게 스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환은 친동생 캐디(이정훈·23)로도 화제가 됐다. 동생은 골프는 초보 급인 화학공학과 대학생으로 지난 4월 군 제대 후 9월 복학 전까지만 형의 백을 메기로 했다. 첫 승 뒤 올해 목표를 3승 정도로 잡았다는 이정환은 “우승은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샷 감각을 유지하면서 매 대회 한 타 한 타 집중해서 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찍 안일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회가 늦게 찾아온 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입니다. 나의 투어는 이제 시작됐고 계속 올라가야겠죠.”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