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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고구려 유적지 가보니]사드영향?...더 교묘해진 동북공정

관광지서 지정된 해설사만 허용

외국인 '韓은 中일부' 오해할 판

중국 지안 장군총의 중국인 지정 해설사(왼쪽). 만약 조선족 가이드가 자체 해설을 할 경우 경비(오른쪽)가 즉각 제지한다. /지안=서은영기자중국 지안 장군총의 중국인 지정 해설사(왼쪽). 만약 조선족 가이드가 자체 해설을 할 경우 경비(오른쪽)가 즉각 제지한다. /지안=서은영기자




해발고도 806m의 산 아래로 옛 비류수로 추정되는 훈장(渾江)강과 굽이굽이 강을 따라 발달한 평원이 내려다보인다. 서문에서 999계단, 깎아지른 듯한 산길을 따라 오른 이곳은 기원전 37년께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동명성왕)이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우고 첫 도읍지로 삼은 랴오닝성 환런(桓仁)의 오녀산성. 고구려의 초기 도성인 흘승골성으로 비정(比定·미상의 것에 대한 추정)되는 곳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탓일까. 까다로운 입국 과정을 거쳐 찾은 이곳 분위기는 사뭇 냉랭했다. 오녀산과 일대 탐방지역은 물론 이 일대에서 출토된 토기·와당 등을 전시한 오녀산박물관에서도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 식으로 서술하는 안내문은 일제히 사라졌지만 고구려를 중국 역사의 한 갈래로 포섭하려는 전시 방식은 좀 더 교묘하고 은밀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예컨대 오녀산박물관 내 광개토왕비를 설명하는 코너에서는 ‘삼국지’ 등 중국 측 사서에 기록된 고구려 관련 내용을 역사적 맥락 없이 발췌 전시하고 있다. 현지 조선인 가이드 고만송(가명) 씨는 “노골적인 설명은 사라졌지만 인용자료를 모두 중국 쪽 자료로 꾸미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의미를 내포시키고 있다”며 “고구려에 대한 지식이 없는 외국인이나 중국인들은 전시를 보다 보면 고구려가 중국 왕조에 예속된 나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이) 한국은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더라)”고 말을 옮기는 황당한 일이 공연히 생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 지린성 지안(集安) 지역에서는 관광객을 내쫓기까지 하는 등 단속이 한층 노골적이었다. 하기야 중국 정부가 2000년대 초 동북공정을 시작하며 공을 들인 지역이 환런보다 지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 지안에서는 한중 간 역사 분쟁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고구려 초기 도성으로 비정되는 중국 환런 오녀산성 정상에서 내려다본 훈장강과 일대 환런분지. 환런댐 건설로 산성 서쪽의 고분군과 마을은 모두 수몰됐다. /환런=서은영기자고구려 초기 도성으로 비정되는 중국 환런 오녀산성 정상에서 내려다본 훈장강과 일대 환런분지. 환런댐 건설로 산성 서쪽의 고분군과 마을은 모두 수몰됐다. /환런=서은영기자


대표적인 장소가 2013년에 정식 개관한 지안시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중국인 안내원을 제외하고 일절 설명을 금지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 자격증을 보유한 가이드 역시 중국인 안내원의 설명 내용을 그대로 통역·전달하도록 했다.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제지하며 급기야 퇴장시키기까지 했다. 현지 관광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방침은 올해 초 정해졌다. 문서상 지침은 아니지만 단체 관광객들을 이끌고 이 일대 박물관과 장군총·광개토왕비 등 주요 유적지를 방문할 때마다 자체 설명을 제지했다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전언이다. 이날 박물관에서 지정한 중국인 해설사의 설명 역시 편파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가령 “고구려가 구석기시대에 머물던 당시 중원은 철기시대였고 고구려는 자체 화폐가 없었다”든지 “네 귀퉁이 토기는 고구려인 자체 제작 기술이 없었고 중원 지역에서 전해진 것이다” 등 대부분의 설명이 고구려 문명이 중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은 구두상으로만 전해질 뿐 안내문이나 팸플릿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장군총이나 광개토왕비 등에서도 단체를 인솔하는 가이드의 설명을 금지했다. 국내 관광객들을 주로 중국으로 송출하는 한 아웃바운드 여행사 대표는 “베이징·상하이 등 대다수 지역에서는 현지 가이드 라이선스를 보유한 조선족이 직접 박물관이나 주요 유적지에서 설명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며 “고구려·발해 역사 등과 같이 일부 정치적 논쟁이 불가피한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는 관광지에서는 비공식적인 지침을 내려 중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일방적으로 통역하도록 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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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왕 3년에 천도한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 지안의 장군총. 적석총 가운데 보존 수준이 가장 우수한 장군총은 현재 장수왕릉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인정되고 있다. 한때 무덤 위로 계단을 놓아 관광객들이 오르내릴 수 있게 했으나 현재는 계단을 제거했다. /지안=서은영기자유리왕 3년에 천도한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 지안의 장군총. 적석총 가운데 보존 수준이 가장 우수한 장군총은 현재 장수왕릉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인정되고 있다. 한때 무덤 위로 계단을 놓아 관광객들이 오르내릴 수 있게 했으나 현재는 계단을 제거했다. /지안=서은영기자


하지만 중국 측의 한국 고대사에 대한 졸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환런과 지안에서 웅혼한 고구려의 기상을 만날 수 있었다.

오녀산성은 가파르게 수직으로 솟아 있는 험준한 형세로 난공불락의 천혜의 요새지인데다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산 정상부에서 훈장강 연안의 환런분지가 한눈에 들어와 적의 침입을 감지하는 데도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경사가 완만한 동벽 남반부를 따라 인공성벽 일부가 남아 있는데 하단에 장대벽을 쌓아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쐐기형 돌을 얹은 다음 사이사이 돌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것이 고구려 당시의 성 축조 기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평가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10여㎞ 떨어진 하고성자는 고구려 건국 초기 평지토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둘레 0.8㎞에 이르는 장방형의 토성이 이곳에 자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170m가량 남은 서벽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유실됐다. 하고성자촌에서 1.5㎞ 남짓 떨어진 상고성자촌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200여기의 고분이 자리해 고구려 초기 도성의 위치는 물론 당시 생활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 자료가 됐겠지만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대부분이 파헤쳐 평지로 개간됐고 지금은 겨우 20여기만 남았다. 국가지정보존구역으로 지정됐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입구에 설치됐지만 무덤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들이 각종 작물을 재배하고 있어 고구려 초기 적석총의 형태를 고스란히 띠고 있는 이곳 돌무지무덤군은 한갓 돌무더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약 40년의 졸본시대를 마감하고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이 자리했던 도읍으로 추정되는 지안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만포와 마주한 도시로 환런에서는 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있다. 무려 420여년간 도읍을 두었던 지안 시내를 둘러싸고 고구려의 역사가 펼쳐진다. 시내에는 국내성터가 남아 있고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통구하를 경계로 동편에는 국내성·광개토왕비·장군총, 서편으로는 마선무덤떼·칠성산무덤떼 등이 남아 있다. /환런·지안=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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