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김모(17)군은 요즘 등굣길이 ‘지옥’이다. 몇몇 친구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을 따돌려서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 앞에서 모욕적인 말로 수치심을 안겨주기도 한다. 참다못해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전화한 김군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들이 더 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반 친구들의 태도는 김군을 더욱더 주눅 들게 한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단순히 같은 학급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지난 3~4월 전국 초중고생(초4~고3) 419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친구에 대한 가해 경험이 있다는 학생들의 가해 이유를 보면 ‘친구가 마음에 안 들어서’라는 응답이 초등학생 11.5%에서 중학생 18.3%, 고등학생 22.7%로 점차 높아졌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친구가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히는 사례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반면 ‘상대가 먼저 괴롭혀서’라는 응답은 초등학생(29.2%)에서 고등학생(16.1%)으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확연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봤을 때 취한 행동으로는 ‘위로하고 도와줬다’가 30~40%가량 차지한 반면 주위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15~19%대에 그쳐 학교폭력에 대한 신고의식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해 장면을 보고도 ‘모른 척했다’는 응답이 초등학생(17.7%)에서 고등학생(25.7%)으로 갈수록 높아졌다.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는 학생은 3만7,000명(0.9%)으로 지난해 1차 조사와 비교해 피해학생 수는 2,000명 줄어들고 피해 비율은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학생 1,000명당 피해 응답 건수는 언어폭력이 6.3건으로 가장 많았고 집단따돌림(3.1건), 스토킹(2.3건), 신체 폭행(2.2건)이 뒤를 이었다.
서울 숭의초등학교 학교폭력 사태를 계기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의 경우 심의 건수가 2015년 1만9,968건에서 2016년 2만3,673건으로 늘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미한 학교폭력도 학폭위에서 처리하도록 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일각의 지적을 받아들여 조사 방식을 ‘전수조사’에서 ‘표본조사’로 전환하고 초등학교용 설문지를 별도로 만들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교사 150명으로 구성한 교육정책 현장평가단에서도 설문조사 방식의 현행 학교폭력 실태조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