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일이 손에 잡혀봐야 알겠죠.”
지난 6일 오전 경남 창원시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회색 작업복을 입은 채 의자에 걸터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김모(38)씨가 말끝을 흐렸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졸업 후 야드 분위기가 밝아졌을 것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에 시큰둥한 답이 돌아왔다. STX조선 협력사인 원엔지니어링 소속 2년 차인 김씨는 “2015년에는 건조 중인 선박을 하루에도 10번 넘게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많아야 2번”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지난 3일 “변제금을 제대로 갚아 왔고 올해 예정인 회생 채권도 일부 조기 변제했다”면서 STX조선의 법정관리 조기 종결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 결정 사흘 만에 찾은 진해조선소 야드에는 일감 절벽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강재 적치장. 이곳은 후판(선박용으로 쓰이는 두께 6㎜ 이상 철판) 등 선박 제작에 필요한 강재를 쌓아두는 곳으로 선각(船殼) 공장, 조립 공장, 도크, 안벽으로 이어지는 선박 건조의 시작점이다. 조선 호황기에는 두께 6mm 이상의 후판이 성인 남자 키만큼 쌓여 ‘강재 탑’을 이뤘고, 이런 탑이 축구장 면적 5배 가까이 되는 적치장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지금은 1~2개씩 사람 발목 높이만큼 쌓여 널찍이 간격을 두고 널려 있었다. STX조선 관계자는 “지난해 수주 실적이 ‘제로’였던 탓에 이달부터 선각 공장과 조립 공장은 일감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생존’을 위해 STX조선은 신규 수주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이날 STX조선 정문에는 ‘Welcome to STX, Oceangold(오션골드의 STX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736억원 규모 유조선 2척 발주 계약을 앞두고 기술 검토 차 STX조선을 찾은 그리스 선사인 오션골드를 환영하기 위해서였다. 일감 한 척 확보가 급한 STX조선으로서는 이들이 ‘상전’이다.
법정관리 조기 졸업 이후 본격적인 영업에 나서면서 구체적인 성과물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STX조선은 또 다른 그리스 선주인 골든 에너지로부터 약 1,700억원 규모의 유조선 4척 건조를 주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STX조선 관계자는 “외국 선주사들은 해양 사고에 대비해 10%가량 웃돈을 주더라도 기술력을 인정받은 한국 선사에 배를 맡기려 한다”며 “조선 시황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만큼 기술력을 벼려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금융권이 꺼리는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어떻게 받아 내느냐다. 애써 건조 계약을 따내더라도 최종적으로 RG를 발급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박영목 STX조선 상무는 “조선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RG 발급에 난색을 보이는 은행권 입장도 이해하지만, 선주 측 문의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해=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