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m아카데미] 전문경영인에게 '기업 살리는 계약' 제시하라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장기 보상·긴 임기 보장해 기업 미래가치에 초점 맞추도록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수업시간에 “기업지배구조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대기업집단(재벌)의 복잡한 출자구조를 이야기한다. 기아차가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가지고 있고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의 주식을 가지고 있고 등등이다. 이러한 피라미드·순환출자 등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언론에 노출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출자소유구조는 기업지배구조의 일부분이다. 기업지배구조는 폭넓게 정의하면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제(mechanism)를 모두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국내 기업의 문제점 중 하나는 총수일가에 집중된 의사결정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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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도덕적 해이 막는 스톡옵션 보상


애플 팀 쿡에 양도제한 조건부 100만주 지급

장기 주가상승 위한 자발적 노력 유도 효과 커

韓 기업 총수 집중형서 분권형 의사결정구조로


총수일가, 지주사 전환·구조조정 등 역할 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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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에 CEO 보수·임기 설계 권한 위임해야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최고경영자(CEO)의 보수(compensation)와 임기(tenure) 설계방식은 중요하다. CEO가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이들의 행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선 보수의 구조를 보자. 미국은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CEO에게 주식을 본격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연봉을 고정급 형태로만 지급하게 되면 발생하게 되는 도덕적 해이를 막아보고자 함이었다. 필자가 2013년과 2014년 미국 기업 7,400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전체 연봉에서 주식 관련 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육박했다. 물론 주식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상승시키기 위한 회계부정이다. 그러나 주식 관련 보상은 대세로 자리 잡았다. 국내 기업은 어떨까. 동일한 연도에 1,116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우선 스톡옵션으로 차익을 실현했다고 공시한 임원이 53명뿐이었다. 전체 연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이다. 임기를 비교해보자. 2016년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 CEO의 평균 임기는 7년이다. 국내 기업경영성과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에서 CEO로 재직한 전문경영인들(재벌총수 일가는 제외)의 임기는 2.5년이다.

미국과 한국의 극명한 대비를 정리하면 이렇다. 미국의 CEO들에게는 (장기) 주식보상과 긴 임기, 한국은 현금보상과 짧은 임기가 주어지는 셈이다. 두 가지 구조의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식 구조가 전문경영인들에게 장기적 시야를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기업은 이것을 어떻게 보완해왔는가. 쉽게 추측 가능한 것이 바로 장기적 시야를 가진 창업자, 창업자 가족과 그들이 직접 통제하는 그룹 컨트롤타워의 존재다. 이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 것인가.

1994년부터 2000년 사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기업을 대상으로 한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창업자(지배주주)가 CEO를 직접 하는 경우 기업의 실적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경영권이 후손으로 넘어가면서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으로 무장한 창업자들의 능력과 열정이다. 이는 타고난 유전자와 경험의 결합이다. 두 번째, 기업이 성장단계에 있을 때는 보스의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고 이에 부합하는 의사결정구조가 권력집중형인 것이다. 그러나 경영권이 후손으로 넘어가고 기업이 성숙·안정단계로 돌입했을 때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국내 기업들은 3~4세 경영단계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은 의사결정구조의 재정비를 검토해봐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은 총수일가·전문경영인·이사회의 역할 분담이다. 총수일가는 지배주주로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되 그 영역은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구조조정 등에 국한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계열사의 의사결정권한은 전문경영인과 이사회에 위임하는 분권형 의사결정구조로의 전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열사의 이사회에 CEO 보수와 임기에 대한 설계 권한을 넘겨야 한다.

팀 쿡은 2011년 8월 애플 CEO로 승진했다. 당시 애플 이사회는 쿡에게 스톡옵션의 하나인 양도제한조건부주식(Restricted Stock Unit) 100만주를 지급했다. 100만주의 절반은 지급일 5년 후인 2016년 8월24일, 나머지 절반은 10년 후인 오는 2021년 8월24일에 귀속되기로 했다. 귀속되는 날짜에 쿡은 주식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애플은 이러한 CEO 보수 계약을 통해 무엇을 의도했을까. 승진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10년 후까지도 이직하지 말고 회사에 남아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장기(long term) 주가상승의 이득을 누릴 수 있는 당근을 제시하는 거다. 쿡을 붙잡기 위한 제도 설계이자 기업의 장기적 미래를 위한 포석이다. 우리도 전문경영인에게 이러한 계약을 제시해보자. 그래야 그들의 시야에 윗사람의 눈치가 아닌 기업의 미래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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