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농구리그 현장, 계열사 임직원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현장을 가다. |
편집자주=‘직장人본색’은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이 매일 빡빡하게 쌓인 보고서, 서류 등에서 벗어나 퇴근 후 업무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직장 내 ‘사내 동호회’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에 어떻게 취미생활을 즐기고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지 그 속을 들여다 봅니다.
“백코트, 수비 손들고! 체력 아끼지 말고 움직여!”
지난 5일 저녁 찾은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훈련원공원 종합체육관. 매주 수요일 이곳에서는 롯데그룹의 농구리그 예선전이 펼쳐진다. 이날은 롯데건설과 롯데렌탈, 후지필름의 삼파전이 열렸다. 참석한 임직원만 30여 명.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모두 퇴근 후 개인 시간을 쪼개 자율적으로 경기를 뛰러 나온 이들이다. 농구리그를 기획한 후지필름 농구동아리 ‘이그나이트’의 함윤희 회장은 “지난해에 사내 농구동아리를 만들고 보니 주위에 농구를 같이 즐길 수 있는 팀이 많이 없었다”며 “롯데그룹 계열사들과 함께하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리그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퇴근 후 코트 위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회사원들이 있다. 롯데그룹의 12개 계열사 내 농구 동아리 임직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본인의 돈을 내고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의욕만큼은 농구선수 못지 않다. 무슨 이유로 개인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사내 동아리 활동에 열심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롯데그룹 농구리그가 열리는 현장을 찾았다.
◇“직장 다닐 맛 난다”는 그들
“사내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뒤부터는 회사에 가는 게 즐거워졌어요. 매주 있는 정기모임을 기다리면서 근무하다 보니 활력도 넘치는 기분입니다.”
롯데그룹 농구리그 현장에서 만난 계열사 임직원들은 입을 모아 사내 동아리를 예찬했다. 퇴근 후 직장 동료와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직장생활 자체가 달라졌다는 반응도 많았다. ‘집-회사-술자리-집’이 전부였던 삶은 농구 하나로 180도 변했다. 실력 향상을 위해 개인 운동을 하거나 농구 스킬 트레이닝을 받는 이들도 늘었다. 실제 롯데건설의 농구동아리인 ‘함바(HAMBA·함께 바스켓볼)’는 프로농구 선수를 감독으로 초빙해 훈련을 받고 있다.
오랜 직장생활 탓에 처음에는 1쿼터를 다 뛰지도 못했던 팀원들은 어느새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뽐낼 만큼 성장했다. 함바의 감독을 맡고 있는 김만종(25·前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선수)은 “팀원들의 열정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며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루 종일 근무하고 퇴근 후에 농구 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예요”라고 말했다.
다른 팀의 상황도 비슷하다. 롯데렌탈과 후지필름의 사내 농구동아리가 생긴 것은 기껏해야 1~2년 전. 10명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 시작한 동아리는 어느새 소속 팀원이 30명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이날 가장 큰 목소리로 응원하며 팀의 사기를 올렸던 롯데렌탈의 방승훈 사원(입사 2년차)은 “이제 입사한 지 만 1년 된 제가 이렇게 많은 회사 선배들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농구동아리 덕분”이라며 “동아리 내에서는 직급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친밀하고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내동아리로 업무 효율도 高高
사내동아리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회사 내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예는 타 팀과 함께 일을 진행할 때다. 같은 회사에 다녀도 소속 팀이 아닌 다른 팀 직원을 알기란 쉽지 않다. 사내동아리에 소속된 팀원은 보통 수십 명. 대부분 각자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덕분에 여러 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서로 의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롯데건설의 농구동아리를 만들었던 오형택 대리는 “전에는 다른 팀 직원들을 거의 알지 못했다”며 “타 팀과 업무를 공유하며 일을 진행할 때가 많은 데, 그럴 때 사내동아리 사람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애사심 역시 자연스레 높아진다. 애사심을 강조하면 호응을 얻기 힘든 최근의 추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소속된 회사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시합을 뛰다 보면 애사심이 절로 생길 수밖에 없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창대한 끝을 꿈꾼다
롯데그룹 농구리그는 올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룹 차원의 지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체육관 대관과 경기 진행 등은 모두 계열사 임직원들이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리그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이유를 묻자 당연하다는 듯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이제 시작인 만큼 앞으로 발전할 일만 남았기 때문에 리그 운영 자체가 즐겁다는 설명이다.
최종 목표는 야구처럼 그룹 체육대회의 한 종목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것. 롯데그룹은 매년 고척 스카이돔을 대관해 계열사 야구리그의 결승전을 열고 있다. 그룹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는 야구리그에는 수십 개의 계열사가 참가하는 것과 달리 농구리그 참가팀은 아직 12곳에 불과하다. 롯데그룹 내 90여 개의 계열사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부족한 숫자다. 내년부터는 리그에 참가하는 계열사를 확보하는 데 더 노력할 계획이다. 롯데그룹 호텔&서비스 BU의 권호석 책임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기 때문에 계열사 직원들이 합심해서 서로 돕고 있다”며 “롯데그룹 농구리그가 계열사 간 서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네트워킹의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순구·이종호기자 soo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