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벤처 기업이 유전자 가위기술로 개발한 근육 강화 돼지가 영화 ‘옥자’의 소재가 돼 전 세계에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바이오·제약 분야의 법적 규제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광화문1번가에 올라온 의견)
줄기세포·유전자 가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희귀 난치병을 해결할 수 있는 신기술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각종 규제와 인식 부족 탓에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경쟁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광화문 1번가를 통해 접수된 정책 제안 중 바이오 분야에서 줄기세포 및 유전자 가위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산하 국민인수위원회가 운영하는 광화문1번가는 국민들의 정책 제안을 받는 홈페이지다. 국민인수위원회는 12일까지 접수된 내용을 취합, 정리한 뒤 관련 부처에 개선 과제로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안 중 줄기세포와 유전자 가위를 키워드로 한 의견은 약 120건으로 집계됐다. 규제 완화를 촉구하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윤리법에 막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를 풀어 미래 먹거리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바이오 업계 및 전문가 집단의 시각과 맥을 같이 한다.
생명체의 유전물질인 DNA를 자르고 붙이는 등 편집하는 교정 기법인 유전자 가위 기술은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인 툴젠(199800)이 특허 6건을 확보하는 등 우리나라가 선두 주자로 꼽힌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일반 돼지보다 근육량이 1.5배 가량 많은 복제 돼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독보적 기술에도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 진행되는 임상연구 실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미국 임상등록사이트에 등록된 유전자 가위 임상연구는 미국(9건), 중국(5건), 영국(3건) 등 해외에서 진행됐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조직분화 과정에서 모든 세포로 분화 가능한 줄기세포 연구 역시 지난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침체됐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메디포스트(078160) 등 일부 바이오 기업들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최근 발간한 ‘글로벌 줄기세포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별 줄기세포치료제의 신규 임상시험에서 한국은 5건으로 기록했다. 미국이 23건으로 가장 많고, 중국(8건)이 우리보다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8년 동안 한국의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연구 건수가 세계 2위였지만 지난 2015년부터 상황은 역전됐다.
업계에서는 현재 운영되는 법 체계에서도 연구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바이오벤처 관계자는 “지난해 법을 개정한 후 희귀질환, 중증질환의 경우 유전자치료제 연구를 허용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를 희귀 질환, 중증 질환으로 봐야 할지 아직까지도 모호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