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정부의 행동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공정이 진행 중인 원전의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 에너지 정책의 일환이라며 ‘적법한’ 절차라고 밝혔음에도 정작 골치 아픈 뒷정리는 한국수력원자력에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의 뒤에 숨어 법적 책임 등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논란의 단초는 정부가 제공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9일 한수원에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중단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이행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달라”는 내용의 한 장짜리 공문을 보냈다. 한수원은 이 공문을 공사에 참여한 17개 업체에 그대로 전달했다.
당장 위법성 논란이 일었다. 현행 원자력안전법 17조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전 건설을 취소할 수 있는 경우를 ‘허가 기준을 위반할 때’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법 조문대로라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법에서 명시한 사유에 해당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 같은 결정을 내려야 할 원안위도 빠져 있다. 원안위는 원자력 안전규제를 총괄하는 국무총리 산하 차관급 위원회다. 한수원을 통해 공문을 건네받은 시공업체 등도 법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며 반발했다.
산업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안전 관련 규제에 근거한 게 아니라 국가의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 방향 전환과 맞물린 결정이기 때문에 주체가 원안위가 아닌 정부라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현행 에너지법 제4조는 “에너지 공급자와 에너지 사용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에너지 시책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산업부의 이 행동이 이율배반적인 책임 회피라고 지적하고 있다. 원전 건설이라는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주체가 정부이고 또 정부가 이를 취소할 수 있는 명확한 권리를 갖는다면 이와 관련된 법적 책임도 정부에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터빈 등 주기기 제작사인 두산중공업도 ‘필요한 조치’라는 모호한 의미의 행정공문을 두산중공업이 “법적·계약적 근거가 무엇인지, 공사 일시중단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수원이 산업부의 공문을 두고 치밀한 법률 검토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한수원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 관련 법률 검토’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 법무실은 정부의 원전 건설 중단 요구를 법적 의무사항이 아닌 ‘행정지도’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결국 공사 중단으로 발생하는 법적 책임 모두가 한수원에 돌아가게 된 것이다.
신고리 5·6호기의 총공사비는 8조6,000억원이다. 공정과 관련해 지금까지 계약된 금액은 모두 4조9,000억원. 이 중 이미 집행된 금액은 1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남아 있는 2조3,000억원을 놓고 법적 공방이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안위가 아닌 정부가 건설을 중지하는 게 적법하다고 하면 그 같은 결정도 한수원을 통해서가 아닌 정부가 직접 구속력 있게 내려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가 한수원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