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20대 젊은이들이 때아닌 논쟁을 벌였다. 행정고시 스터디모임 멤버 4명은 책을 펴지도 않고 신임 인사혁신처장의 개혁 방향을 예측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행시 준비 2년차인 김모(29)양이 “올 초 행시 폐지론까지 나왔던 만큼 상당 부분을 개혁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5년차 선배인 나모(30)씨는 “오래된 고시 체제를 그렇게 한번에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김판석 연세대 교수가 12일 신임 인사혁신처장에 임명되자 행정고시 수험생들이 김 교수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 초 더불어민주당이 2017 대선 정책으로 ‘행정고시 폐지론’까지 거론한 만큼 김 교수가 행정고시에 개혁의 칼을 휘두를지 관심이 쏠린다. 공무원 수험생의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김 교수의 과거 논문과 인터뷰 내용을 올려놓고 저마다 해석과 전망을 붙이는 등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김 교수는 주로 정부 고위관료 인사와 교육훈련을 위주로 연구해왔지만 필기시험 위주의 공채 방식에 대해서도 종종 혁신의 뜻을 내비쳤다. 1999년 작성한 ‘정부인력 선발방식 개선: 행정 고등고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는 △지나치게 세분화된 문제 출제 △선택과목 시험의 공정성 훼손 △채용 인원의 유동성으로 인한 수험생 혼란 △지나친 암기로 인한 행정학 교육 목표 훼손 등 현 행정고시 체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2004년 ‘한국 공무원 인사제도 개혁’이라는 저서에서는 공무원 등용 제도와 교육훈련 다양화 방안을 직접 제안했고 2012년 언론 인터뷰에서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면접과 실무 중심의 채용 방식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행정고시 혁신’의 가능한 모델 세 가지를 소개한 뒤 차기 정부가 이를 병행해 혼용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과목 수를 조정하거나 채점 방법을 통해 현행 제도를 ‘소폭 개선’하거나 현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부가적으로 새로운 채용 방식을 병행하는 ‘중폭 개선’ 방안을 소개했다.
우수 대학·대학원생을 기용하거나 5·7·9급을 하나의 시험으로 통합해 시험 난이도만 조절하는 방법이 대표적인 예다. ‘대폭 개선’은 기존 채용시험 방식을 자격시험으로 바꾸거나 대학원을 설립해 완전히 전환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방안은 다양하게 고민하되 현 고시 제도에 대한 개선안이 마련되면 법 개정까지는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의 개혁 가능성을 내다보는 학생들은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특히 현재 시험방식에 최적화하도록 3~5년을 투자한 ‘중수생’들이 초조해한다. 행정고시 3년차에 접어든 장모(30)씨는 “솔직히 개혁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당장 3년 안에는 변화가 없었으면 한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보고 시험에 임하고 있다는 5년차 수험생 민모(31)씨도 “5년 동안 체제가 원하는 대로 공부해왔는데 갑자기 개혁한다고 하면 허탈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고시 폐지론만 아니라면 일정 부분 개혁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행정고시학원 강사 윤모(44)씨는 “현행 필기시험 제도가 아시아권 일부 지역에서나 통용될 만큼 낙후돼 있기는 하다”며 “임기 내 단행하려 하기보다 시간을 충분히 두고 추진한다면 수험생들도 부담을 덜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고시 준비를 갓 시작한 대학생 김모(26)씨도 “책을 보다 보면 이렇게 쓸데없는 걸 언제까지 공부해야 하나 회의가 든다”며 “심층면접으로 역량을 다양하게 평가하는 방안이 도입된다면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