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물리력을 행사해 이사회를 막은 것은 안타깝지만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애초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원전공사 중단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혼란과 갈등만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노조에서는 한수원 이사들을 배임죄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나섰고 공사중단에 따른 보상주체나 비용산정도 문제다. 이날 무산되기는 했지만 한수원 이사회라는 것도 법적 근거와 절차적 정당성이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원전건설 허가권은 엄연히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갖고 있는데도 감독권자인 한수원이 행정지도만으로 중단 결정을 내리는 것은 논란만 키울 뿐이다. 더욱이 안전 문제나 허가절차에 하자가 없다면 시공업체의 공사를 중단시키거나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러니 한수원의 결정이 민간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뿐더러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새 정부의 원전정책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대통령의 발표 이후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국무회의 결정 과정도 그렇거니와 말단기관까지 불과 사흘 만에 공문으로 하달되는 등 절차상 하자투성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한미동맹까지 위협하며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부르짖던 정부가 원전에 대해서는 군사작전처럼 졸속으로 진행하는 이유를 국민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은 사드보다 국민 생활과 국가 안보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중대한 국정 사안인데도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에서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이를 국정철학으로 삼겠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사드뿐 아니라 탈원전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합당한 절차를 따라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잘못 끼운 단추를 다시 채운다는 마음으로 원전 정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