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美, 한미FTA 개정협상 통보] 美, 차·의약품·농산품 공세 예상…韓, 무역규제 합리화에 초점

<핵심 쟁점은>

美, 韓 법률시장 개방 건들며 셰일가스 수입 요구

韓, 美 에너지분야 진출 확대·수입규제 우려 제기



미국 정부가 12일(현지시간) 예고 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소집을 요구하면서 양국 간 FTA 개정 협상은 장외에서부터 사실상 시작됐다. 양국이 한미 FTA 협정문을 수정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하는 것은 미국이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FTA 발효 전인 지난 2011년 132억달러였던 무역적자(미 상무부 기준)가 지난해 276억달러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며 협정을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 FTA를 손보는 협상은 미국이 공세적이고 우리는 최대한 방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한미 FTA 수정 협상은 미국의 필요로 시작된 협상”이라며 “미국이 요구하는 이익을 합리적으로 배척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공동위 요구에 대해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시나리오별로 다 준비가 돼 있다”며 “당당히 요구할 것은 요구하겠다”고 밝힌 것도 협상에서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양국은 일단 공동위를 언제 어느 나라에서 개최할지부터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은 서비스 시장과 규제 분야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FTA는 개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협정으로 양국의 공산품이 100%, 농산물은 98%에 달한다. 미국이 상품 분야에서 문호를 더 개방하라고 요구할 여지가 거의 없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국 기업이 유리한 의약품과 법률 시장 개방을 FTA 합의문대로 이행하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한미 FTA 공동위에서 빠짐없이 의약품·의료기기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가 의료보험의 재정 문제를 꺼내 들며 의약품의 가격을 제한하는 ‘실거래가 제도’ 등의 규제를 고치라는 요구다. 여기에 법률회사의 외국계 지분을 49%로 제한한 것과 자동차 연비규제, 수리 이력 고지 등을 완화하라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업체가 철강 제품을 미국에 시중보다 낮은 가격으로 파는 덤핑수출도 문제 삼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구글의 지도 반출 사례에서 보듯 우리 정부의 데이터 공개에 대한 투명성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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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미국의 에너지 인프라 시장 진출 확대와 수입규제 개선을 정면으로 조준할 방침이다. 미국은 최근 우리의 철강 수출을 문제 삼으며 ‘불리한 가용정보(AFA)’ 규정 등을 강화했다. 덤핑 등으로 제소된 우리 업체의 자료 제출이 부실하다고 판단하면 미국 정부가 가장 불리한 사실을 적용해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FTA에 별도의 무역구제 조항을 만들어 수입규제를 합리화하는 한편 커지는 미국의 에너지 시장에 우리 기업들의 진출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 밖에 미국이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 등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폐지는 미국보다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더 많기 때문에 안전장치로 남겨둘 공산이 크다.

문제는 한미 FTA에 ‘농산물’이라는 아킬레스건이 있어 언제든 국내의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미 FTA 때 쇠고기 협상을 문제로 국내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미 양국은 협상 당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되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면 전면 수입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는 호주산을 제치고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 1위를 차지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우리가 민감한 배·사과 등의 수입검역 완화와 관세 조기 철폐 등을 미국이 요구하면 국내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속내를 간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FTA를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셰일가스 등 에너지 수출과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 등으로 실익을 얻어 국내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협력실 박사는 “자동차 규제를 풀면 유럽 차가 더 팔릴 것이고 농산물 시장을 빨리 개방한들 미국산 소를 두 배, 세 배 더 먹지는 않는다”며 “미국은 실제로 협정의 개정보다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바우 산업연구원 연구원도 “미국이 주장하는 사실들은 팩트(사실)가 아닌 것들이 많고 협정을 개정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라며 “한미 FTA를 앞세워 다른 곳에서 실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강광우기자 ksh25th@sedaily.com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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