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한반도 正脈 '산줄기'를 건강하게

김동필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김동필 부산대 교수


정맥(靜脈)은 우리 몸의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포함한 혈액이 심장으로 가는 동안 거치는 혈관이다. 그런데 같은 음, 다른 의미의 정맥(正脈)이 있다. ‘국토의 실핏줄처럼 뻗어 나온 산줄기’를 뜻한다. 이 개념은 조선 시대 지리서인 ‘산경표(山徑表)’에서 비롯됐다. 산경표에 따르면 한반도의 산줄기가 1개의 대간(백두대간), 1개의 정간(장백), 그리고 13개의 정맥 등 총 15개의 산줄기로 이뤄졌는데 이 산줄기가 10개의 큰 강에 물을 대는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정맥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대한민국의 대표 산줄기로 그 길이가 남한에만 2,152㎞에 달한다. 대부분 100㎞ 이상의 연속된 산줄기로 주요 하천을 끼고 있으며 동식물의 서식지와 이동통로 역할을 하는 등 자연·생태적 가치가 높고 인근 주민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 역할을 한다.


실제로 산림청과 한국환경생태학회 공동연구에 따르면 정맥에 연결된 행정구역은 91개 시·군으로 국토의 40%를 차지하며 정맥 주변에 삶의 터를 가진 인구수는 2,200만명(백두대간 215만명)으로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잘 알려진 백두대간에 비해 도심과 인접해 있어 우리 삶에 더 밀접하다. 이 때문에 정맥이 국민에게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은 연간 2조900억원에 달한다.

또 멸종위기의 야생·희귀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주요 사찰 등 문화재가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는 정맥은 ‘역사·문화·자연이 연결된 복합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맥의 숲은 열대야를 식히는 ‘녹색 에어컨’으로 각광 받고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도심 인근에 있는 정맥 숲은 찬 공기를 공급하는 통로 역할을 해 도심의 폭염과 열대야를 완화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시대에 도심 생활권에 미치는 정맥의 역할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맥의 뛰어난 자연·인문학·기후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각종 개발로 대규모 훼손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이뤄진 정맥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도로·골프장 등으로 인한 대규모 훼손 지역만 800여개소 이상이었다. 특히 도시에 인접한 곳일수록 산줄기의 훼손이 심했다. 정맥에 대한 보전관리 대책이 시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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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이 법에 의해 보호 지역으로 지정·관리되는 것처럼 이제 정맥도 보호가치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제도권 내에서의 보호·관리가 필요하다.

먼저 정맥 지역 산림자원을 중심으로 가치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 구명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별로 세분화해 보전관리 정책을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백두대간과 연결된 곳, 고산지 등 보전가치가 높은 곳을 중심으로 훼손 지역을 생태적으로 복원하고 추가적인 훼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장치를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능선 축의 연결성이 훼손되는 경우는 산지전용 등 개발행위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이를 보전해야 할 것이다.

특히 도시와 연결되는 도심 주변 정맥은 대기정화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숲 가꾸기, 산림복원 등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 도심 인근 숲을 잘 관리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인근 주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우리 몸의 정맥은 혈액을 원활히 흐르게 하면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다. 국토의 실핏줄인 정맥은 우리의 삶과 자연 생태계를 건강하게 해주는 생명줄이다. 정맥 산줄기와 숲을 관리하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동필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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