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교수 꿈꿨던 조석래…글로벌 그룹 키우고 박수칠 때 떠나다

[조석래 前효성회장 51년만에 경영일선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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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효성그룹 전 회장이 ㈜효성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지금 효성의 모태였던 동양나일론에 입사한 뒤 51년 만의 일이며 부친인 조홍제 선대 회장에 이어 1981년 그룹 회장직에 취임한 후 36년 만이다. 조 전 회장이 그룹을 이끄는 동안 효성은 한때 재계 순위 5위까지 오르는 등 국내에서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조 전 회장이 처음 효성에 입사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원래 조 전 회장은 경영과는 상관없는 대학 교수를 꿈꿨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학위까지 받은 ‘인재’였다. 하지만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그는 1966년 2월 부친으로부터 급히 귀국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11월 조 전 회장은 귀국해 바로 동양나일론에 입사하게 된다. 당시 효성은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그룹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던 시기였고 부친인 조 선대 회장은 화공학을 전공했던 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 뒤 조 전 회장은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는 향후 효성그룹 성장의 기틀이 됐다. 그 후 효성은 동양나일론 성공을 바탕으로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해 화섬사업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키워냈고 1975년에는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을 인수해 중화학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대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美서 공학 석사 받은 인재

부친 부름에 동양나일론 입사

중화학산업 기틀 마련하고

R&D 집중 신기술 개발 선도




시련도 있었다. 국내 30대 기업 중 16곳이 도산하던 1997년 외환위기는 효성도 존폐를 걱정하던 시기였다. 조 전 회장은 우량 계열사였던 효성BASF와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 중공업 부문의 효성ABB를 매각했다. 동시에 나일론 섬유와 타이어코드에서 국내 1위인 효성T&C와 폴리에스터 2위인 효성생활산업, 중전기 분야 국내 최대 업체인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주력 4개사를 ㈜효성으로 합병했다. 사업성이 뛰어나지만 장기적인 전략에 불필요했던 우량 계열사를 매각하고 핵심 역량을 갖춘 사업에 투자를 집중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효성의 구조조정 사례는 아직도 학계에서 모범으로 꼽히며 경영혁신의 성공 사례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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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를 꿈꿨던 조 전 회장은 누구보다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인정하던 경영자였다. 그래서 민간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의 신기술 개발을 선도했다. 효성이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에어백 원단 등 세계 1위의 제품을 4개나 보유할 수 있었던 것도 조 전 회장의 ‘기술 경영’ 덕분이었다.

2007년부터 전경련회장 맡아

재계 큰어른·외교사절 역할도



조 전 회장은 대한민국 재계의 큰 어른으로 소임을 다했을 뿐 아니라 민간외교사절로서의 역할도 늘 강조했다. 재계에서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이 ‘왕회장’으로 불렸다면 조 전 회장은 ‘노(老)회장’으로 통한다. 2007년부터 전경련 회장을 맡으면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때로는 정부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은행권이 기업에 대출을 해주며 대가로 적금 가입 등을 강제하던 ‘꺾기’ 관행에 대해 전경련을 방문한 국회의원 앞에서 이를 비판한 일화는 유명하다.

조 전 회장은 격식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평소 수행비서를 대동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해외 출장 때도 실무부서 직원이 동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혼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독서를 좋아하며 학구적이고 동시에 합리적이기도 하다. 조 전 회장이 일찌감치 장남인 조현준 효성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것도 이런 성격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조 전 회장이 중국 출장에서 귀국하는 길에 마중 나온 임원들이 가방을 들어주려 하자 “내 가방은 내가 들 수 있고 당신들이 할 일은 이 가방에 전략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일화 중 하나다.

효성그룹은 조 전 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으로 본격적인 ‘3세 경영’에 돌입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말 조 전 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은 후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재계에서는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가입하는 등 효성이 안정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 것이 3세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조 전 회장의 건강상 문제도 퇴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효성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경영 상태가 부쩍 좋아진 지금이 적절한 승계 시기라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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