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신고리 5·6호기 일시중단 기습결정] "일방적 결정에 정책신뢰 큰타격"...실직·소송 등 후폭풍 예고

"유치여부 합의 5년 걸렸는데

대통령 한마디에..." 주민들 격앙

靑·정부는 협력요청만 한 셈

최종책임은 한수원에 떠넘겨

14일 한수원 이사회가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기습 결정한 가운데 한수원 경주 본사에 경찰 병력이 배치되는 등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연합뉴스14일 한수원 이사회가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기습 결정한 가운데 한수원 경주 본사에 경찰 병력이 배치되는 등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연합뉴스


“지역주민들끼리도 신고리 5·6호기를 유치할지 말지 합의하는 데 5년이 넘게 걸렸는데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몇 달 만에 결정을 뒤집는 정부를 앞으로 어떻게 믿겠습니까.”(이상대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반대 범울주군민대책위원장)

한국수력원자력의 기습적인 이사회 개최와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결정에 노조와 지역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지역 주민들은 정부 정책 추진 방식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 위원장은 “아직 법이 바뀐 게 아니고 대통령이 공약으로 탈원전을 얘기한 것일 뿐인데 한수원이 이같이 결정하는 것은 독재 정부에서나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 역시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 양상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제까지는 산술적인 비용논란이었다면 이제는 정부 정책의 신뢰도 문제로 확산하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원자력학계의 한 교수는 “한수원이 장소를 바꿔서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하루아침에 그 결정을 뒤집은 것은 결국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자초한 것”이라며 “청와대와 정부는 지금 원전 정책에 대한 전기요금 인상 수준 등 객관적인 데이터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그건 없이 원전에 대한 선호도 조사만 하고 있으니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산업통상자원부가 이제 와서 ‘원전은 위험하다’ ‘전력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자기 부정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정권이 부처에 일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한수원의 고위 관계자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는 “이제까지 주민동의를 얻기까지 들어간 노력이 다 무시된 것”이라며 “이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정책을 누가 믿고 따르겠느냐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한수원 이사회의 기습적인 공사 일시 중단 결정은 너무 성급하게 진행돼 각종 후유증도 예상된다. 당장 한수원 직원들과 지역주민들은 일자리가 불안해졌다. 한수원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 공사 관련 종사자는 시공사·제작사·설계사·협력사 직원 등을 포함해 1만2,80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참여한 협력 중소기업 단체인 원자력산업살리기협회의 한 관계자는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따라 회사 종사자들은 일자리 박탈 우려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관련기사



협력업체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풀어야 한다. 이번 3개월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으로 시공업체들이 입을 피해는 인건비 120억원을 포함해 약 1,000억원에 달한다.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으로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전면 중단될 경우 기업들의 피해 규모는 매몰비용 1조6,000억원을 제외하고도 1조원까지 늘어난다.



문제는 이번 신고리 5·6호기 일시 중단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는 일시 중단을 발표하고 협조 요청만 했기 때문에 최종적인 책임은 한수원이 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법적 근거를 마련해 보상비용을 충당해야 하지만 이는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할 사안이다. 여야 간에도 의견이 크게 갈리는 상황에서 탈원전의 합법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한수원과 계약한 기업들의 줄소송도 예상된다.

이번 결정을 내린 한수원 이사진에 대한 배임 논란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 노조는 이사회가 일시 중단을 의결하면 이사회를 배임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것도 숙제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이 전날 지역주민과 만나 공론화 과정에서는 최종적으로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멈추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주민들을 다독였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한수원 이사회의 이번 결정으로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원전 11기와 오는 2029년 설계수명을 다하는 원전 11기도 사실상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이미 정부가 공론화위를 구성해 시민배심원단이 신고리 5·6호기의 완전중단 여부를 판단하도록 결정했는데 이번 한수원의 결정은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균열 서울대 원자력학과 교수는 “한수원 이사회가 종합공정률 30%에 육박하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일시중단 결정을 내린 것은 상징성이 큰 만큼 신규 원전 건설과 수명이 다하는 원전의 계속 운전 여부를 결정할 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