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여명] 끝나지 않은 '씨티은행 드라마'

우여곡절 겪은 점포폐쇄 과정

노조 반발에 정치권·당국 가세

민간은행 경영개입 오해 불러

외국투자자들 우려 시각 키워





이리될 줄 알았다. 한국씨티은행 사태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말이다.


씨티은행은 전국의 101개 영업점(점포)을 폐쇄한다는 애초의 계획을 수정해 90개만 폐쇄하기로 노사가 최근 합의했다. 박진회 씨티은행 행장과 송병준 노조위원장이 합의안을 들고 사진도 찍으면서 노사 갈등이 조용히 매듭지어지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씨티은행의 점포폐쇄 중단’ 압박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새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마지막 ‘반전’을 남기게 됐다. 반전 드라마는 늘 예상하지 못한 결론이 나오게 마련이다.

씨티은행은 지난 3월 말 일반소비자를 상대로 한 전국 점포 126개 가운데 101개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자사 거래의 95% 이상이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에서 이뤄지는 상황인데 기존 창구에 배치된 직원은 전체 40%나 돼 비효율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대신 점포를 유지하는 비용을 들이느니 창구 직원들을 재교육시켜 금융상담이나 보험·투자 등 보다 복잡하고 고객에게 필요한 업무에 재배치하는 게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발표와 동시에 노조가 반발했고 곧바로 정치권이 가세했다.

집권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점포폐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여는가 하면 은행이 점포를 폐쇄할 때는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입법으로 강제하겠다는 움직임도 있었다.


노사갈등이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때 정치권이 중재를 위해 개입한 사례는 있었지만 비교적 평온했던 사업장 갈등까지 정치권이 끼어들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씨티은행의 경우에는 정치권이 전방위로 나섰다. 과도한 개입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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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정부 탄생을 도운 금융노조의 도움에 화답하기 위해 정치권이 움직인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이 확산하면서 다른 시중은행들도 씨티은행과 같은 점포폐쇄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이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씨티은행이 ‘본보기’가 됐다는 관측도 나왔다.

씨티은행이 애초의 계획을 수정하는 데 금융당국도 나름 기여했다. 정치권 움직임에 호응해 금융위원회가 행정지도 지침을 내리고 금융감독원은 현장점검에 나서겠다며 동시에 압박을 한 것이다. 감독권한과 인허가권을 쥔 금융당국이 나서자 ‘을’ 위치에 있는 씨티은행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금융위나 금감원은 ‘조용한’ 일 처리로 업계의 호응이 컸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 일로 기존의 공식이 깨져버렸다. 언제든지 정치권과 교감하에 금융당국이 움직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전처럼 시장이 정교하게 관리되는 게 아니라 과거 관치 시절 때와 같이 터프하게 관리될 여지는 커지게 됐다.

한 정치인이 ‘풀은 바람이 불면 눕지만 검찰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말해 화제가 됐는데 금융당국도 이 범주에 포함될 것 같아 개운치 않다.

과정이야 어떻든 노조나 정치권·금융당국은 씨티은행을 몰아붙여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문제는 끝난 줄 알았던 씨티은행 드라마가 반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한미 간 FTA 재협상의 새로운 뇌관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상대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외국투자자들의 눈에는 씨티은행 사태를 민간은행의 경영전략에 정치권이 나서 좌초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씨티은행 글로벌 지점에서 박 행장에게 ‘격려’의 메시지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후진적인 국내 금융환경을 빗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경영을 해내고 있느냐’하는 일종의 비아냥인 것이다. 최근 해외에서 기업설명회(IR)를 마치고 돌아온 금융지주 회장들은 사석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너희 나라는 (투자하기) 괜찮겠냐”라는 것이다. 조용히 시장에 맡겨둬도 될 일을 굳이 나서서 일을 키워 소탐대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 what@sedaily.com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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