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얼마나 싫은 일을 했길래 그렇게 주말이 좋아. 유명한 대학, 유명한 회사 찾아 다니는 동안 네 꿈은 어디로 갔어…”
금발 곱슬머리를 올려 묶은 남자가 청중을 향해 속삭인다. 맨발에 펑퍼짐한 바지만 보면 ‘야인’ 같은데 가사는 한국 직장인들의 삶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섬세하다. 공연이 끝나기 무섭게 10여명의 젊은이들이 그에게 몰려와 묻는다. “아니, 한국 사람 마음을 어쩜 그리 잘 아세요?”
3년 전 교대역에서 ‘촛불 하나’를 불러 유명세를 탄 뒤 ‘교대역 백형’, ‘신촌역 안선생’ 등으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은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27)씨. 거리 공연 영상마다 4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지난해엔 아리랑TV 국악프로그램의 진행자까지 맡으며 한국인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그가 올해 8월, 온 모습 그대로 한국을 떠난다. 8개월 동안 버스킹(길거리 공연)만으로 전세계를 일주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에게 한국은 각별한 추억이 있는 나라다. 언론사 특파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유년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한국 중학교를 다닐 땐 이국적인 외모 탓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했고 자퇴 후엔 혼자 고등학교 교재를 독파했다. 매일 고시원 천장을 바라보며 고독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바빴다. 그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정서까지 이해하는 이유다. 그는 “당시엔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조금만 실수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왜소하고 두려움 많았던 소년이 10년 후 위풍당당한 청년으로 변할 수 있었던 건 2년 간의 노숙생활 덕분이었다. 영국인 태생 안씨는 생후 3개월 만에 일본인 부부에게 입양된 후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스무살이 되던 해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집을 박차고 나온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번 돈으로 유럽, 동남아시아, 호주까지 여행을 다녔다. ‘가진 것 없이도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가슴이 뛰었다. 그는 “돈은 없지만 창의력이 넘친 덕에 이렇게 살아남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해마다 유명기획사 사장들이 전속계약을 맺자고 찾아오지만 그의 발걸음은 전 세계 길거리를 향한다. “노래하고 기타 치며 ‘솔직한 돈’을 받고 사는 것”이 평생의 꿈인 까닭이다. 그는 수동성의 함정에 빠진 청년들도 자신처럼 꿈을 찾아 전력 질주하기를 바란다. 그는 “5년 전 내가 100달러를 들고 한국을 뜨지 않았다면 여전히 같은 고민의 수렁에 빠졌을 것”이라며 “단순히 가난해지지 않으려, 미래의 불안감을 덜어내려 애쓰기보다 다양한 창의성을 발휘해 원하는 목표를 이루며 살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오는 22일과 23일,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그는 앞으로도 “봄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안씨는 거주하던 도시가 겨울이 되면 곧바로 봄날씨를 찾아 떠나는 습관이 있다. 그는 “일부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도망가느냐고 놀리지만 난 노래 부르기 좋은 날씨를 찾아 떠나는 것”이라며 “똑같은 행동을 해도 싫은 것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나가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이번 공연 목표도 ‘실수 없는 완벽한 공연’이 아니라 ‘감동이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것. 그는 마지막 공연을 통해 한국 청년들에게도 이 같은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랬다. “겨울을 피해 도망갈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들의 봄을 향해 달려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