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불만을 모두 여행가이드 탓으로 돌리는데 가이드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행가이드 200여명은 지난 7일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겠다며 한국노총 산하에 여행가이드노조를 설립했다. 이들은 국내 여행 업계의 구조상 현지 가이드는 ‘절대 을(乙)’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준길 가이드노조 사무처장은 “가이드 업무환경을 따지고 보면 ‘염전노예’보다 나을 게 없다”며 “수많은 가이드가 대형 여행사의 횡포와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가장 큰 문제로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저가 관광상품의 손해를 현지 가이드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노조에 따르면 저가 패키지 여행상품은 항공권 비용과 숙박비 등을 제외하면 한 사람당 10만~25만원의 적자를 떠안는다. 여행사들은 이러한 손실분을 가이드에게 떠넘기는데 가이드들이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단체관광 상품은 주로 국내 대형 여행사에서 관광객을 모집한 뒤 현지 중소 여행업체(랜드사)에 팀을 배정한다. 팀 배정에 따라 랜드사 수익이 결정되기 때문에 대형 여행사의 요구에 맞출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여행 업계 관계자는 “가이드 수입원은 현지 상점 등과의 계약 수수료와 개인적으로 받는 팁이 사실상 전부”라며 “손해분을 채우고 수익을 내기 위해 고객들의 불만을 알아도 옵션 관광이나 쇼핑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는 홈쇼핑이 새로운 판매채널로 떠오르면서 홈쇼핑 패키지 상품의 각종 비용을 가이드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관광상품은 비성수기에 집중되는데다 판매가격이 일반 상품보다 저렴한 까닭에 손실 폭이 커 가이드가 ‘이중고’를 겪는다는 얘기다. 또 다른 여행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 광고비의 50~70%를 현지 랜드사에 떠넘기는 반면 수익은 나누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규모가 작은 업체는 어떻게든 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만다”고 전했다.
가이드 업무는 높은 강도뿐 아니라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업무의 특성상 달리는 차량에서 서 있거나 뒤를 보고 이동하는 경우가 잦아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진다. 한 가이드는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났는데 안전벨트를 맨 관광객들은 무사했지만 선 채로 안내하던 가이드는 장애 2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며 “가이드라고 하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노조는 여행 업계의 불공정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대응할 방침이지만 관계부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해외에서 일하는 가이드는 현지 국가의 법을 적용받아 행정력이 미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가 간 외교관계뿐 아니라 무역협정 등과 연결된 부분이라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