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공공 장부(帳簿) ‘블록체인(Block Chain)’ 혁명의 시대가 바야흐로 열리고 있다. 가상화폐(디지털 공간에서 거래되는 전자화폐) 비트코인의 거래를 가능하게 한 온라인 보안 기술 정도로만 알려졌던 블록체인이 광범위하고 혁명적인 쓰임새를 앞세워 세상의 질서를 바꿀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덩달아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블록체인이 새로운 황금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 IT 서비스 업체 중에서는 LG CNS가 가장 민첩하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LG CNS는 지난 2015년 11월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상품 오픈 플랫폼을 통해 비상장기업 5개사의 전자증권을 발행한 바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전자증권 발행은 LG CNS가 국내 최초의 사례였다. 당시 LG CNS의 블록체인 기반 금융상품 오픈 플랫폼은 비상장 주식 유통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주식 정보의 투명성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봐도 LG CNS의 블록체인 기반 전자증권 발행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전인 그 해 10월 미국 장외주식시장 나스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머니 20/20컨퍼런스’ 행사에서 6개 비상장 기업의 주식을 대상으로 전자증권 발행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었다.
2015년은 블록체인 기술의 상용화 역사에서 매우 큰 진전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다. 그 해 9월 골드만삭스, JP모건, UBS, 바클레이스, HSBC 등 세계 금융시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은행들이 미국의 핀테크 기업 ‘R3CEV’와 업무 제휴를 맺고 블록체인 시스템의 공동 개발 및 국제표준 도입 논의에 착수했다. 블록체인 기술이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셈이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글로벌금융회사들이 손잡은 R3CEV가 핀테크 분야의 스타트업(신생기업)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블록체인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R3CEV는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사업가 데이비드 러터가 창립을 주도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시장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확신한 인물이었다.
R3CEV는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제휴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최대의 금융 특화 블록체인 컨소시엄(R3 컨소시엄)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현재 R3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는 80여개에 이른다. 국내 금융권에서는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 5개사가 참여 중이다.
LG CNS는 최근 이 R3 컨소시엄과 손을 잡았다. 지난 5월말 국내 IT 서비스 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R3와 사업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는 LG CNS가 블록체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사실 LG CNS는 2015년 블록체인 기반 비상장 주식 유통 플랫폼 발표 이후 눈에 띄는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왔기 때문이다. LG CNS 관계자는 “그동안 블록체인 관련 기술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왔지만 상업화에는 큰 진척이 없었다”며 “하지만 이제 블록체인 전담 조직인 디지털금융사업팀을 중심으로 사업을 본격화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LG CNS는 R3 컨소시엄과 더불어 국내 유망 스타트업들도 함께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 블록체인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이 3자 협의체는 단순한 기술 확산을 넘어 개발자와 기업이 블록체인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표준을 정립하는 한편 국내 금융 환경에 특화된 블록체인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블록체인의 잠재력과 파급효과가 큰 주목을 받으면서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LG CNS 같은 기존 IT 서비스 기업뿐 아니라 블록체인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신생기업들도 20여개 이상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에 사업의 초점을 맞추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의 블록체인 기술 수준은 미국 등 선발주자들에 비해 1~2년 정도 격차가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 정도 격차는 단기간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특히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를 구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박성준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블록체인은 ‘제2의 인터넷’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기술”이라며 “우리나라도 블록체인 기술을 하루빨리 도입해 4차 산업혁명에 앞서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LG CNS가 손잡은 R3 컨소시엄의 금융 특화 플랫폼 ‘코다(CORDA)’는 금융산업에 최적화된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기술이다. 분산원장은 P2P(Peer to Peer·개인간 거래)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참여자들에게 거래내역이 담긴 원장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코다는 거래 당사자들만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정보 보호와 신속한 거래 합의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또 개발 자들의 기술 개발이 용이하고 기존 금융회사 시스템과 쉽게 결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LG CNS는 R3 컨소시엄과 협력해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검증한 다양한 블록체인 기술 적용 사례를 국내 금융권에도 보급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 은행들은 공인인증 대체, 금융기관 간의 계좌 이체와 채권 거래 등 금융 거래, 각종 정보 공유를 효율화하는 플랫폼으로서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 분야를 넘어 다양한 산업 분야에도 확산될 전망이다. 블록체인은 거래와 기록이 발생하고 증빙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신뢰를 담보하는 동시에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김홍근 LG CNS 금융사업 담당 상무는 “R3 컨소시엄과의 협력을 통해 이미 검증된 글로벌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 LG CNS의 풍부한 금융사업 경험을 결합해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아울러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산업 전반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신뢰’와 ‘보안’의 블록체인, 세계 경제 작동 방식을 바꾼다
블록체인(Block Chain)은 말 그대로 블록을 체인으로 연결했다는 뜻이다. 이때의 블록은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진 거래의 데이터 묶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블록체인은 데이터 묶음이 끊임없이 연결되는 거대한 디지털 데이터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 묶음의 연결 구조가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디지털 공간에서 ‘신뢰’와 ‘보안’을 탁월하게 보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공간은 익명성이 특징이기 때문에 사람들끼리 서로 신뢰하기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온라인 거래를 하려면 정부나 금융기관 등 공인된 ‘제3자’를 통해야만 한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서로 믿고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나 금융기관을 통할 필요도 없어진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거래 데이터가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참여자에게 분산 저장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를 누군가 나쁜 의도로 해킹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해킹할 거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블록체인은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한 최강의 디지털 보안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블록체인의 엄청난 잠재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7년 전 세계 총생산의 10%에 달하는 데이터가 블록체인 기술로 저장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유력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블록체인은 세계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거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